>    주일 설교    >    설교

설교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6) 귀한 직분에는 철저한 순종을 요구한다.
2026-10-17 08:27:51
사무실1
조회수   9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6)

귀한 직분에는 철저한 순종을 요구한다.

민 4:1-20절

261011주일낮설교

우리는 지난주에 민3 장을 통해서 레위인 중에서 1개월 이상 된 남자의 수를 계수하니 2만 2천 명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역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속 제물로 구별된 사람들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레위 인을 향해서 너는 내 것이라고 칭하셨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분되었기에 싸움에 나가거나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직 회막을 관리하도록 명령이 주어지고 있다. 레위 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손에는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있었지만 금송아지 사건 때 하나님 편에 서서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정리하는 데 앞장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헌신을 받으시고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다. 그 결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회막을 관리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4장은 레위 인의 직무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3장에서는 1개월 이상 된 남자의 수가 2만 2천명이었다.

그런데 4:1-3절에서는 회막에서 실제 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30세부터 50세까지의 사람을 계수하라고 하신다. 30세 이상으로 규정하신 것은 전 인격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윗 시대나 히스기야시대 그리고 포로 귀환 시대에는 20세 이상이 회막 일에 봉사하도록 했다.

스 3:8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나이가 하향 조정된 것은 회막에서 봉사할 수 있는 숫자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은 레위 인에게 회막 일을 맡기셨는데 레위 인과 관련하여 성막이라는 단어보다는 회막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신다. 민4:3절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성경에는 회막이 성막이나 증거 막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기에 거룩한 장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증거 막은 십계명 돌판이 담겨 있는 증거궤를 보관하는 장막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회막은 하나님과 백성들이 만나는 만남의 장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4절-49절에는 게르손 고핫 므라리 자손을 계수하고 직무를 부여한다. 레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고 순서대로는 게르손 고핫 므라리 이다. 이들은 자손을 형성하여 3장에서 한 달 이상 된 남자를 계수할 때 게르손 고핫 므라리의 순서대로 나온다. 그런데 4장에서는 둘째인 고핫 자손이 제일 먼저 나오는데 그 이유는 아마 고핫 자손이 담당해야 하는 일이 성막의 지성 물에 대한 것이었기에 그런 것으로 볼 수 있다.

▶ 고핫 자손에게는 증거궤 진설 병 등잔대 금 제단 성소에서 쓰는 모든 기구와 번제단 그리고 번제 단에 쓰는 모든 기구를 맡았다. 이들은 성소의 모든 성물을 맡았지만 포장하는 데는 참여하지 못했다. 성소의 성물 포장은 제사장들의 몫이었고 포장된 것을 고핫 자손이 운반했다. 하나님은 고핫 자손이 옮기는 과정에서 성물을 만지거나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보는 것을 철저하게 금했다. 30-50세 는 2,750명이었다.

▶ 게르손 자손에게는 회막 전체와 뜰까지의 모든 휘장류를 담당하게 했다. 성막 지붕을 덮는 3개의 휘장(염소 털로 만든 휘장, 붉은 물 들인 수양 가죽, 해달 가죽) 뜰의 휘장과 이에 관련된 기구들(말뚝과 줄들 망치 같은 것)이었다. 30-50세는 2,630명이었다.

▶ 므라리 자손은 회막 및 회막 외부 뜰의 기둥 그리고 외벽에 관련된 집기들이었다. 회막의 외벽을 형성하고 있는 널판 48개와 기둥 9개 그 받침으로 쓰이던 은 받침 105개 그리고 널판을 연결하는 띠 들이다. 30-50세는 3,200명 이었다. 4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영적 교훈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1. 증거궤는 가까이하기에 두려워 멀리해야만 하나?

 

본문 4절 “진영이 전진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서 칸 막는 휘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그 위를 해달의 가죽으로 덮고 그 위에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그 채를 꿰고”

 

언급했듯이 고핫 자손은 회막에 있는 성물들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일을 맡았다. 그들이 맡은 것 가운데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증거궤 였다. 고핫 자손이 지성 물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특권이지만 특별히 세심한 주의가 요구될 뿐 아니라 위험도 따르는데 그들이 옮겨야 하는 증거궤를 직접 보거나 만지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먼저 지성소와 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을 걷어 증거궤를 덮고 또 해달 가죽으로 덮고 마지막으로 순청색 보자기를 덮은 후에 채를 꿰면 그때 비로소 고핫 자손이 증거궤를 들어 올리게 된다. 성소와 성막 뜰에 있는 모든 기구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같은 방식으로 제사장들에 의해서 포장이 되었을 때 고핫 자손이 들어 운반하게 되어있다.

성물은 직접 만질수도 없었다. 고핫 자손에게 있어서 지성 물을 다루는 직책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들의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였으니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 말씀드렸듯이 제사장이었던 나답과 아비후가 성소에서 다른 불로 제사하다가 죽었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온 언약궤를 들여다보았기에 집단 적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에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웃사 라는 사람이 언약궤를 싣고 오던 소가 뛰는 바람에 떨어질 뻔한 언약궤를 손으로 붙잡음으로써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언약궤를 사람의 방식이나 생각대로 운반하거나 대해서는 안 되고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 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에 있어서 정 중앙에 위치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예배 중심의 공동체라는 것을 의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증거궤를 이스라엘의 중심에 둔 것은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만 인식하여 그저 멀리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연약한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범죄 함으로 죽은 것을 의미한다. 죄로 죽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인간에 대해 하나님은 계속 적으로 사랑의 구애 작전을 펴신다. 노아의 가족을 통하여 새로운 민족을 이루게 하셨지만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그들은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자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삼기를 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갔고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을 부르시며 함께 있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두려우신 분으로만 인식하면서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져만 갔다.

하나님은 결국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불러 하나님 곁에 두기를 원하신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운 분이라고 멀리만 하거나 아니면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어떻게 해도 다 받아주실 것으로 인식하여 만홀히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줄 믿고 그 하나님을 우리 중심에 모셔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목자가 함께 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험한 세상도 아무런 어려움이나 걱정 근심이 없는 푸른 초장이 되는 줄 믿기 바란다. 성경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이다.

이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승리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성소가 바뀌어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되었다.

고전 3:16-17절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솔로몬 왕 때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으므로 회막에서 성전으로 바뀌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와 기도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었다. 제사 중심의 유대교는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 적인 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제자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성령이 임하게 되고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 특히 베드로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삼 천명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

모인 그 사람들이 각 가정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세워진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모였으므로 시설을 갖춘 교회는 아니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하며 교제하는 곳을 교회라고 칭했다.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부른 것은 어디로부터 불러냄을 받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말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해서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라고 이해하면서 교회를 에클레시아로 칭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 된 교회라고 칭하고 있다. 구약의 회막의 거룩 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출 40:35절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회막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것은 그곳이 거룩한 곳이다. 성막이 거룩하기에 하나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셨기 때문에 성막이 거룩한 곳이 되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목적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자기 백성과의 만남을 사모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인이었기에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는 제사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자기 백성을 만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복을 얻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받게 된 것이다.

벧전 2:9절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 오셨다.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 성도들은 육 적인 이스라엘이 감당하지 못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하는 제사장은 거룩해야 한다. 믿는 우리들을 가리켜 성도 즉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비록 우리가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기에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내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여 어디에 있든지 믿음을 잃지 않고 신앙인의 본분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동거지 하나라도 다른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든지 교회의 직분에 맞지 않는 모습들이 나와서는 안 된다.

엡 2: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받은 성도로서 마땅한 본분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축원한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557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6) 귀한 직분에는 철저한 순종을 요구한다. 사무실1 2026-10-17 9
556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5) 버려진 것이 아니라 드려진 제물이다. 사무실1 2026-10-10 49
555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4) 신앙생활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사무실1 2026-10-02 58
554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3) 레위 지파는 특권계층인가? 사무실1 2026-09-23 73
553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2) 나는 영적 군대에 속한 병사인가 사무실1 2026-09-19 71
552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1) 민수기를 시작하면서 사무실1 2026-09-08 101
551 본받고 싶은 교회(24) 바람직한 교회 생활 사무실1 2026-09-01 98
550 본받고 싶은 교회(23) 질서는 공동체의 정화작용 사무실1 2026-08-25 107
549 본.받고 싶은 교회(22) 기도의 후원이 불필요한 사람은 없다 사무실1 2026-08-18 119
548 본받고 싶은 교회(21)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무실1 2026-08-11 126
547 본받고 싶은 교회(20) 주의 날의 도래에 대한 진실 사무실1 2026-08-04 109
546 본받고 싶은 교회(19) 역경의 파도를 넘어 행복의 안식처로 사무실1 2026-07-29 129
545 본받고 싶은 교회(18) 자랑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교회 사무실1 2026-07-21 134
544 감사함으로 행할 때 얻을 수 있는 유익 사무실1 2026-07-11 151
543 본받고 싶은 교회(17) 거룩함과 거룩한 교제를 힘쓰는 교회 사무실1 2026-07-04 164
1 2 3 4 5 6 7 8 9 10 ...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