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받고 싶은 교회(24)
바람직한 교회 생활
살후 3:3-18절
260830주일낮설교
한 순례자가 여행을 하다가 어떤 늙은 수도사를 만났다. 이 순례자는 수도사에게 만약 선생님의 인생이 오늘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겠냐고 물었다. 늙은 수도사는 자기의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가장 먼저 아침 기도를 올리겠지. 그리고는 차를 한 잔 마시고 뜰에 나가 잡초를 뽑아야 할 테고 그다음에는 이웃에 있는 친구 존을 만나려 갈 거야. 그리고는 낮잠을 좀 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순례자가 그것은 선생님께서 하루를 지내시는 일상적인 생활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수도사는 순례자에게 물론이지 마지막 날이라고 다른 날과 다를 수 있겠냐고 대답했다. 이 수도사의 삶은 세상의 마지막이 온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이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일에 성실했다.
‘성실’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Sincerity’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라틴어인 ‘Sinecera’(시네세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시네세라는 없다는 뜻인 Sine(시네)와 밀초라는 뜻의 Cera(세라)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 밀초가 없다는 뜻이다. 요즈음은 포장이나 운송 술이 발달해서 먼 곳에서 상품이 배송되도 별로 상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운반 도중에 상품이 파손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운송업자는 파손된 부분을 밀초로 감쪽같이 때워서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밀초로 때운 부분이 녹으면서 파손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밀초로 때운 부분이 없는 상품은 계약서에 시네세라 라고 썼는데 이것은 밀초로 때운 부분이 없는 정품임을 보여 주는 일종의 품질보증서였다.
이 ‘시네세라’에서 영어단어 Sincerity 즉 성실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성실이란 밀초로 때워서 파손된 부분을 감쪽같이 숨기는 것과 같은 속임수가 없는 것이 성실이다. 정직함이 성실이고 순수함이 성실이다. 비록 하루밖에 남지 않은 인생을 산다고 할지라도 평소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성실이다. 우리는 이처럼 모든 일에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데살로니가 지역에 들어가 전도하는 바울에게나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심한 성도들에게 유대인들의 갖은 핍박과 회유가 있었다. 결국 바울은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곳에 남아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성도들은 여러 가지 박해와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지켜 나갔다. 물론 핍박을 견디지 못하여 믿음이 흔들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주후 51년 경에 고린도에서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데살로니가전서다. 그리고 약 10개월이 지난 뒤에 다시 편지를 썼는데 이것이 데살로니가후서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핍박받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격려하는 글을 썼다.
그런데 전서와 후서는 내용상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서는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후서는 다소 책망하고 훈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이유는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잘못된 재림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핍박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 감당했던 것은 확고한 재림신앙 때문이었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잘못된 재림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로 인해 흔들리는 교회에 바울은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이제 바울은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특별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애정을 가지고 온전한 신앙생활을 독려하고 있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인사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평강을 기원하며 변함없는 주님의 은혜가 그들 가운데 넘치기를 위해서 축복하고 있다.
1. 성도는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한 일을 해야 한다.
본문 13절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본문에서 선을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선한 일이라고 하면 착한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좋게 대하는 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을 이해하려면 그 문맥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시한부 종말론의 영향으로 자기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만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니면서 사람들을 미혹해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무절제 한자들이나 게으른 자들이라고 책망하면서 그들에게서 떠나라고 경고했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흔들리지 말고 자기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일상생활이나 교회 안에서 주어지는 일들에 대하여도 흔들림 없이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에서나 교회 안에서나 흔들림 없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들을 잘 감당하는 것을 선한 일이라고 말씀한다. 성도는 마땅히 교회 안팎에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흔들림 없이 잘 감당해야 한다.
성도가 선한 일을 행하다가 왜 낙심하고 주저앉거나 실망하여 흔들릴까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벳새다 벌판에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군중에게 말씀을 전하시고 돌려보내면서 허기질까 봐 바쳐진 어린아이의 도시락 즉 작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모여 있었던 오천 명의 사람들을 다 먹이셨다, 그들을 돌려보내시면서 자기는 따로 기도하시기 위해 남아 있고 제자들만 갈릴리 호수를 배 타고 건너게 하셨다. 그 밤에 호수에는 풍랑이 일고 있었고 자연히 배가 출렁이게 되었다. 새벽녘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이 있는 배로 오셨다. 그것을 본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소리치자 에수님께서는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정을 취하게 하셨다. 그때 성격 급한 베드로가 주님이시거든 나로 명하여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오라고 하니까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로 걸어 갔다. 그런데 예수님께 가는 중에 심한 물결이 치는 것을 보고 물에 빠졌다. 처음부터 풍랑으로 인하여 물결이 치고 있었지만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예수님이 아닌 주변 상황을 바라보자 그만 물에 빠지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 주어지는 일들을 하다가 휘청거리거나 심지어는 실족하여 주저앉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다.
나는 열심히 하는 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낙심할 수 있다. 주어진 일을 행하는데 괜한 오해나 비난으로 인해 흔들릴 수도 있다. 아니면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시험에 들기도 한다. 우리가 맡겨진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라보거나 주변 상황을 의식하면 흔들리거나 시험에 들 수 있다.
사탄은 성도가 평탄한 길로 가지 못하도록 방해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나 내 감정으로 모든 것을 이겨나가기란 역부족이다, 그러므로 연약한 나를 바라보거나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라도 흔들리고 있다고 인식되면 주변 사람들이나 주변 상황을 탓하지 말고 나의 믿음의 연약함을 깨닫고 더욱 믿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굳건한 믿음에 서 있으면 웬만한 바람이나 물결도 우리를 감히 넘어뜨리지 못한다.
2. 불순종하는 자들의 회개를 위해 사랑의 징계가 필요하다.
본문 14-15절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면하라”
바울은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의 처방대로 따르지 않는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부끄럽게 하라고 강한 어조로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원수같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처럼 대하여 권면해야 한다. 이는 미워서 쫓아내라는 것이 아니다. 원수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같이 권면하여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려는 사랑의 방편이다. 하나님은 사랑이고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라고 하면서 불순종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매몰차게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지만 그 안에 질서가 흐를 때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표지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표지라고 하면 책의 앞뒤 겉장을 말하지만 그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 뜻은 다른 대상과 구별하여 어떤 대상을 확정하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표상적 또는 개념적 특성을 말한다. 교회의 표지라고 할 때는 교회가 다른 것과 구별하여 교회로서의 독특한 특성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는 말씀의 선포가 있고 둘째는 성례의 바른 집행이고 세 번째는 정당한 징계다.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하면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집행되는 것에 대해서는 알겠는데 교회에 무슨 징계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교회 안에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시행되고 있지만 오늘날에 교회에서 사라진 것이 올바른 징계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세속화되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징계다. 바른 징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몇 사람의 의견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성경 말씀이나 교회법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문제가 있는 사람을 넘어뜨려서 못 일어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권면을 통해서 바로잡는 것이 목적이다.
징계는 병든 자를 치료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검사를 해보니 몸에 암세포가 발견되었고 아직 초기라고 한다면 얼른 수술을 통해서 암세포를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암세포가 있는데 아직 초기라고 방심해서 그대로 방치 해두면 말기 암이 되고 결국 수술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러므로 아프고 힘들더라도 병이든 부분에 대해서는 결국 칼을 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는 것은 몸을 망가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살리고 건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 바른 징계가 시행되되 감정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성경의 원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납해 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용서해 주는 것은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원수같이 대하지 말고 형제같이 대하라고 권고한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는 결국 회개하지 않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그럴 때 그는 예수님의 12사도 에서 이름이 박탈되었다. 그러나 베드로를 위시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많은 실수를 했고 심지어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닭이 울 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결국 회개했다. 회개한 베드로를 다시 찾으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시며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로 사랑의 공동체다. 사랑은 잘하나 잘못하나 그저 좋다고 하면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잘한 것에는 칭찬하고 잘못한 것에는 바르게 하는 수정이 필요하다. 그럴 때 진정한 사랑과 평화로운 공동체가 될 수 있다.
정의와 공의가 강같이 흘러 넘치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이 교회를 통하여 모든 성도들이 기쁨과 만족함 가운데 행복한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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