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받고 싶은 교회(15)
행복한 삶으로의 위대한 초청
살전 5:16-18절
260531주일낮설교
어머니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사과 과수원에 갔다. 사과를 한 박스 사니까 같이 동행한 아이들에게 커다란 사과를 선물로 주었다. 사과를 받아 든 아이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한 엄마가 어른이 사과를 주시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물으면서 감사합니다는 인사를 유도하려고 했다. 그래서 어른이 사과를 주시면 다섯 글자로 뭐라고 하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작은 아이가 하는 말이 깎아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 아이가 하는 말이 뭐 이런 걸다. 라고 말했다. 아이들 입에서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마치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이 맥추 감사절도 아니고 추수 감사절도 멀었는데 왠 감사 설교냐고 할 수 있다. 감사는 특정한 절기나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늘 감사가 따르는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감사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 된 우리들의 삶이 늘 행복하고 복된 삶이 되기를 원하신다. 신33:29절 상반 절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시면서 그의 백성들을 행복한 삶으로 초대하시는데 그 초대장은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명령은 우리에게 권위를 세우시거나 두려움에 떨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으로의 강한 초대장이다.
엄마가 외출하면서 집에 있는 자녀들을 위하여 아이스크림과 맛있는 과자를 사서 냉장고와 식탁에 두면서 그 앞에 조그만 메모장에 이렇게 썼다. 냉장고에 있는 맛있는 아이스크림과 식탁 위에 있는 과자를 동생과 같이 나누어 먹어라.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먹으라는 말은 명령 형이다. 그러나 그 말은 자녀들에게 먹거나 말거나 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니까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백성 된 우리 성도 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데 오늘 본문은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1. 무조건적인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라.
본문 16절 “항상 기뻐하라.”
이스라엘의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통해서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부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가장 만족하게 여기고 기뻐하는 사람이다.”라고 쓰여 있다. 사람은 기뻐할 줄 알아야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뻐하라고 권하지 않고 더 나아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이 말에 대해서 우리는 기뻐하거나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기뻐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루는 잠시 여유가 있어서 T.V.를 틀어서 방송 채널을 돌리다가 예기치 않게 트로트 음악 경연대회에서 한 초등학생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에 멈추었다. 너무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었다.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나이 든 어른들이나 부를 것 같은 노래를 너무 멋들어지게 부르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내가 잠시 멈추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아이도 그런 아이들이겠지 하는 생각에 잠시 멈추어 있는 가운데 노래가 끝났다. 그러면서 관중을 향해서 인사하는 그 아이의 얼굴 모습에 나의 마음을 빼앗겼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나중에 보니까 그 아이에 대한 별명이 미소 천사였다. 나중네 보니까 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이나 관중의 점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국민 점수에서 많은 득점을 해서 결국 3등을 했다. 물론 그 아이의 음악성이나 가정 사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그 아이 얼굴의 가득한 미소가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은 것 같다.
우리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기보다는 대체 적으로 굳어 있다. 얼굴의 미소는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표현이 얼굴과 말로 표현된다. 우리 얼굴이 본래부터 웃는 상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 마음에 기쁨이 넘치면 그것이 우리의 얼굴로 피어나게 되는 줄 믿는다.
왜 우리가 항상 기뻐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것은 우리가 헛된 것에 기대어 생활하기 때문이다. 수가성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의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여자는 여러 명의 남편이 있었는데 누구에게도 만족함을 얻지 못했다. 마치 오늘 우리들의 모습과도 동일하지 않은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도 돈 서방이나 쾌락 서방이나 명예 서방 내지는 권세 서방이나 기타 세상의 서방에게서 만족함을 얻으려고 이 남자 품으로 아니면 저 남자 품으로 옮겨 다녀 보아도 어느 서방 하나 기쁨과 만족함을 주지 못한다. 우리의 진정한 서방은 예수 서방밖에 없는 줄 믿고 그 안에서 기쁨과 만족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요 4: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으로부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우리에게서 계속 솟아나서 끊임없는 만족과 기쁨이 마음에 넘치게 되는 줄 믿기 바란다. 감옥에 들어 있으면서도 빌립보 교회에 편지하는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외쳤다.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이나 상황이 아니었지만 바울의 마음은 평안했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의 샘이 마르지 않았다.
우리의 얼굴이 미소와는 거리가 멀고 세상이 주는 참된 만족과 평안이 없다고 해도 주님으로부터 주시는 참된 평안과 만족함으로 늘 샘솟는 기쁨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멈추어서는 안 되는 깊은 영혼의 호흡으로 존재하라.
본문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우리 성도 대부분은 기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는 해야 되는 것으로 말은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기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는 해야 한다는 이론이나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벌려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마치 영적 호흡이기에 영적 호흡이 끊어지면 영적 생명도 끝나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눅 22:39절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는 것은 의례적인 모습으로 기도하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표준 새 번역 성경에서는 늘 하시던 대로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던 것이 평상 시에도 늘 하셨던 것이기에 큰일을 앞에 놓고서도 자연적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가신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도 평상시에 기도하던 사람이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위급한 상황에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평상시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자연히 기도의 자리에 나오기 보다는 세상 다른 일에 분주하게 움직이느라고 기도를 뒷전으로 미루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자연히 기도의 자리에 나오겠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남 유다 왕 가운데 믿음의 왕을 꼽는다면 당연히 히스기야를 꼽을 수 있다. 그런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도 인생의 위기를 만나기도 한다. 하루는 히스기야 왕에게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전한다. 다시 말하면 왕은 이제 죽을병에 걸렸기에 가족들에게 유언 하고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엄청난 소식을 들은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얼굴을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이제 세상의 것은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마음을 열고 기도하겠다는 표현이다.
사 38:2절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히스기야는 자기의 과거 평상시의 삶을 고백한다. 그는 늘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 목전에서 생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평상시에 하나님을 찾았던 히스기야였기에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났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었다.
기도는 이론이 아니고 실제로 행하는 것이다. 기도를 안 하던 사람이 처음 기도하려고 하면 잘 안된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치우쳐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기도가 늘 하는 습관이 되면 언제나 어디서든지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영적 호흡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영적 호흡을 멈추지 말기를 바란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을 당연한 것을 여긴 것이 아니라 기도의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 가운데도 늘 깨어 기도에 힘쓰는 귀한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3. 범사에 감사하라.
본문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라는 말은 세상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또 세상 사람들도 좋아하는 말이다. 그러나 성도의 감사는 세상 사람들의 감사와 달리 수준 높은 감사가 되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의 감사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은 조건이 허락되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것을 행하는 것은 어렵다. 인간적으로 행하기 어려운 일이기에 사람들의 판단과 뜻으로는 전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인 18절에 이것은 이라고 할 때 그것은 같이 연결되어 있는 범사에 감사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16절부터 18절에 나오는 세 가지 요소를 말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가 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것을 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뜻하시는 소원을 우리 힘으로 지키고 행하기에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안 된다고 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게 될 줄로 믿는다.
연약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믿음의 열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
| 539 | 본받고 싶은 교회(15) 행복한 삶으로의 위대한 초청 | 사무실1 | 2026-06-05 | 9 |
| 538 | 교회를 사랑하는 자의 특징 | 사무실1 | 2026-05-30 | 35 |
| 537 | 질서로 세워지는 공동체 | 사무실1 | 2026-05-23 | 48 |
| 536 | 사랑과 행복의 보금자리 | 사무실1 | 2026-05-16 | 61 |
| 535 | 본받고 싶은 교회(13) 영적 프레퍼 족 | 사무실1 | 2026-05-09 | 63 |
| 534 | 본받고 싶은 교회(12)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대비하는 자세 | 사무실1 | 2026-05-02 | 61 |
| 533 | 본받고 싶은 교회(11) 마지막을 소망하는 믿음의 자세 | 사무실1 | 2026-04-25 | 72 |
| 532 | 성찬의 참된 의미 | 사무실1 | 2026-04-18 | 87 |
| 531 | 새로운 변화를 알리는 부활 | 사무실1 | 2026-04-11 | 88 |
| 530 | 십자가에서 죽으심 | 사무실1 | 2026-04-04 | 112 |
| 529 | 본받고 싶은 교회(10)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바른 신앙 자세 | 사무실1 | 2026-03-28 | 90 |
| 528 | 본받고 싶은 교회(9)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 | 사무실1 | 2026-03-21 | 103 |
| 527 | 본받고 싶은 교회(8) 성숙한 기도의 향연 | 사무실1 | 2026-03-14 | 105 |
| 526 | 본받고 싶은 교회(7) 사랑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것 | 사무실1 | 2026-03-07 | 117 |
| 525 | 본받고 싶은 교회(6) 변화와 성장의 원동력 | 사무실1 | 2026-02-26 | 10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