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설교    >    설교

설교

질서로 세워지는 공동체
2026-05-23 09:25:00
사무실1
조회수   9

질서로 세워지는 공동체

살전 5:12-15

260517주일낮설교

미국 아마즈나 사막을 가로질러 가노라면 사막 중간쯤에 낡은 오두막집이 나오는데 그 집 옆에 낡은 물 펌프가 하나 있다. 행인들은 목이 타서 반가움에 펌프 손잡이를 잡고 물을 푸려고 한다. 바로 그 펌프의 손잡이에 깡통이 하나 매달려 있고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가 담겨있다. 이 펌프에 물을 붓고 펌프질만 하면 물이 틀림없이 나온다. 이 땅 밑의 샘에는 언제나 물이 흐른다. 펌프 옆의 바위 곁을 파헤치면 큰 병에 물이 담겨있는 데 그 물을 펌프에 다 붓고 펌프질하면 물은 얼마든지 필요한 대로 충분히 나온다. 그리고 펌프질을 끝내고 물을 마신 후에는 병에 물을 가득 채워서 마개로 꼭 막고 처음 있었던 그대로 다음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모래 속에 묻어 두시오.추신 : 목마르다고 하여 병의 물을 먼저 조금이라도 마시게 되면 당신의 목은 잠시 축일 수 있어도 뒤에 오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사막에 있는 펌프의 이야기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혼탁한 사회를 맑게 하기 위해서는 작은 일 같아 보이지만 새치기 안 하고 줄을 서거나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교통신호를 지키는 일이며 지극히 미미한 약속이라도 지킬 때 사회질서가 서고 갈증을 해결하는 펌프의 물은 계속 솟아 나올 것이다.

 

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 둘 이상의 공동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질서라고 생각한다.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질서의 문제는 사람들의 독창 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무질서하게 행하신 것이 아니라 무질서한 상태에서 질서와 조화를 통해서 창조하셨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빛을 만드시고 물 가운데 윗물과 아랫물로 나뉘시고 아랫물을 나누어 땅과 바다로 만드셨다. 땅을 만드셔서 땅에 살 수 있는 동식물을 만드시고 물에 살 수 있는 물고기를 지으셨다.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하신 뒤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것들 가운데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시고 곧바로 동식물을 먼저 만드셨다면 모든 동식물 들은 물에 잠겨 다 수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질서의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 안에도 질서가 흐르게 하셨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교회 안에 필요한 질서가 어떤 것이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특히 본문에서는 두 부분에서 권면한다는 말씀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12절 말씀에서 보면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라고 되어 있는데 표준 새 번역 성경에서는 우리는 여러분에게 부탁한다고 되어 있다.

14절에서는 너희를 권면하노니 라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다른 성경에서도 그렇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12절의 말씀도 여러분에게 권면한다는 의미의 말씀이고 14절도 권면한다는 말씀이기에 두 부분의 권면의 말씀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함께 누리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가장 귀히 여기며 서로 화목하라.

 

본문 12-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이 부분의 말씀에 대해서는 말씀 전하기에 조금은 부담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인 부분에 해당 되는 말씀이 아니기에 듣는 입장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말씀이다. 먼저 교회 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성경을 근거한 헌법에는 장로를 둘로 구분하는데 가르치며 다스리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로 구분하고 있다. 가르치며 다스리는 장로는 목사요 다스리는 장로는 시무장로를 말한다. 지금은 이것들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지만 초대교회 때에는 목사와 장로의 구별 없이 통칭해서 장로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베드로서를 보면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켜 장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표준 새 번역 성경 5:1 나는 여러분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같은 장로로서,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함께 누릴 사람으로서 권면합니다.

벧전 1:1절에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가르치며 권하는 장로인 목사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목사도 장로이기에 교인들의 대표로 성도들보다 앞장서서 성도들을 지도하며 다스리는 장로님들도 포함하는 말씀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가장 귀히 여기며 서로 화목 하라는 말씀이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장 귀히 여겨야 한다는 말이다. 표준 새 번역 성경에서는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 라고 되어 있다.

교회는 군대 계급처럼 높고 낮은의 구별이 있는 상하의 관계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가리켜 가정과 같다고 표현한다. 가정도 계급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은 서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서로가 다 귀히 여기는 존재들로 구성된 공동체다. 마찬가지로 교회 역시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전하며 가르치고 성도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지도하며 다스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귀히 여기고 존중해 주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다스리는 장로님들을 향해서도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인정해 드려야 한다. 그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은 성도들의 인정받고 성도들 위에 군림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신 직분에 충성하여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아주 귀한 분들이다. 교회 일을 내 일처럼 여기며 앞장서서 봉사하고 말없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로님들이기에 그들의 하는 일 때문에 장로님들을 귀하게 여기며 존중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목사와 성도 간에는 서로 화목해야 한다. 불화한 관계에 있으면 서로에게 짐이 되고 힘들다. 목회자와 성도 간에는 서로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여야 한다. 만약에 목회자를 오해하여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원활하지 못하고 결국 신앙의 침체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저의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데 중학교 2학년 때인데 영어 선생님이 가르치다가 무엇인가 하나를 실수하신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몰라도 그러고 나니까 그 선생님에 대해서 벽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과목에 대해서도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손해는 내가 본 것이다.

목사에 대해서 화평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전하는 말씀에 은혜가 되지만 껄끄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면 말씀이 마음에 심기기보다는 길가와 같이 단단히 굳어진 마음에 떨어져 결국 사탄이 그 말씀을 불어 날려버려 빈 주머니가 되어 마음에는 늘 공허함만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기 신앙 증진을 위해서라도 목사와 장로 그리고 모든 성도 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화평한 가운데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성숙한 사랑과 화평으로 공동체를 세우라.

 

본문 14-15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여러 신앙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문제가 없고 완벽한 교회를 찾다 보면 결국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고 이리저리 방황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교회를 찾는 본인도 역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완전한 교회의 도움을 받기를 원하지만 이 땅의 교회는 다 불완전한 개체들이 모여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변에 있는 연약한 성도들을 바라보면서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본문은 말하고 있다. 먼저 나오는 말씀이 게으른 자를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성격적으로 느긋하여 나태하고 게으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을 표준 새 번역 성경에서는 무질서한 자라고 말씀 한다. 무질서한 자를 권계 하라는 말씀이다. 교회는 질서의 공동체이기에 그 질서를 깨뜨리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공동체를 허무는 사람이기에 잘못하지 않도록 타일러 주의를 주는 것이 권계하는 것이기에 권계하여 그렇게 하지 않도록 하여 공동체를 세워 나가라는 말이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사람에 대해서는 누르지 말고 격려하라고 말씀하며 힘이 없는 연약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붙들어 주리고 말씀한다. 모든 사람에 대해서 참아주고 인내해야 하며 자기에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악한 마음으로 맞대응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하라고 권하고 있다.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부끄러운 말이 있다. 교인들은 마음에 가지고 있는 악한 감정 즉 응어리를 절대 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교에 이런 표현은 좀 부적절해 보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껄끄러운 감정을 서로 술 한잔하면서 회포를 푸는데 기독인들은 술을 안 마셔서 그런지 응어리를 풀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말할 때 먼저 표현되는 것이 사랑의 종교라고 일컬어지지만 실제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나하고 친하고 잘 통하는 사람하고만 가깝게 지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 여기서 죄인이라고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반역하고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을 말하는데 자기에 대하여 반역하고 핍박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대적하던 무리들 이었지만 그들을 용서하시고 더 나아가 자기 생명을 죄인들을 위하여 던지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생각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내놓지는 못해도 그들을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15:12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교회 공동체는 질서의 공동체이기에 교역자나 평신도인 성도와의 계급적인 구분이 아니라 하는 일들의 구분으로 서로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며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성도 간에도 연약한 자나 부족한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으로 감싸주며 안아주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수원 새빛 교회는 세상에서 완벽하고 흠 잡을데 없는 교회는 아니다. 그러나 완전한 천상 교회의 모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하여 교역자나 모든 성도들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며 사랑하는 귀한 공동체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1 2 3 4 5 6 7 8 9 10 ...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