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3)
레위 지파는 특권계층인가?
민 1:47-54절
260920주일낮설교
지난주에 민수기를 시작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지 1년 정도 시내 광야에 머물면서 율법을 받고 또 회막에 대하여 받은 계시대로 회막을 제작했다. 그리고 출발하기에 앞서 이십 세 이상 된 남자를 계수하니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십 세 이상 된 사람들을 계수하시며 백성들을 하나님 군대의 영적 군사로 삼아주시며 그들을 향하여 강한 영적 군사가 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영적 군사는 인간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 해야 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군사는 하나님에게 속한 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거하는 은총을 입게 된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었음을 확신하며 이 땅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지난 시간 자세하게 살피지는 않았는데 지파 별로 계수할 때 레위 지파는 계수에서 제외되었다.
제외를 시킨 것이 어떤 이유에서이고 또한 특혜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TV 채널에서 신병 4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그 가운데 신병 한 사람이 그 부대의 사단장 아들로 나온다. 그 병사는 입대 전 아버지가 편한 곳으로 보내줄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한다. 그리고 일반 훈련병들과 함께 훈련을 받지만 남 들보다 잘 못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 그렇지만 사단장 아들이라는 신분이 점차 노출되면서 주변에서 잘해준다. 그러나 그 병사는 그런 것들을 마다하고 아버지 사단장의 명예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한다. 군인들에게 포상 휴가는 황금 같은 기회이기에 다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단장 아들 병사는 포상 휴가도 거부하고 다른 사람에게 돌린다. 이유는 자기가 잘해서 얻은 상이지만 혹시 사단장 아들이니까 준 것이 아니냐 하는 오해를 받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이것은 드라마상에서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라고 할 때 사단장 아들 병사는 군대의 금수저로 특권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자기가 태어난 환경은 선택할 수 없고 태어나보니 그러한 가정이었다고 그 자체만으로 특권계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국회의원 아들처럼 엄마 찬스로 병사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모의 찬스가 아니라 자기 능력으로 큰일을 하면서 사회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레위 지파는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을 계수하는데 포함되지 않았다. 12지파 중에서 수가 많은 지파는 유다 지파로 칠만 사천육백 명이고 제일 적은 지파는 므낫세 로 삼만 이천이백 명이었다. 레위 지파는 가장 적은 지파보다 적은 수로 일 개월 이상 남자의 수는 이만 이천 명이었다. 그러나 수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레위 지파는 인구 계수에서 제외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1. 레위 지파를 구별하신 것은 그들에게 부과된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본문 47절 “그러나 레위인은 그들의 조상의 지파대로 그 계수에 들지 아니하였으니”
본문 50절 “그들에게 증거의 성막과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부속품을 관리하게 하라 그들은 그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운반하며 거기서 봉사하며 성막 주위에 진을 칠지며”
하나님께서는 왜 레위 지파에 대해서만 특별 대우를 하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편애가 없으시며 질서의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공정하게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부터 되는대로 행하신 것이 아니라 질서 있게 행하셨다.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하시며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둘째 날에는 윗 궁창과 아랫 궁창 즉 하늘과 아래 바다로 구분하셨다. 그리고 셋째 날에는 물을 땅과 바다로 나누시고 땅의 식물을 만드셨다. 이것이 공간을 구분하신 것이다. 이제 그 공간을 채우신다. 넷째 날에 낮과 밤을 주관하는 광명 체를 다섯째 날에 물고기와 새들을 여섯째 날에 땅의 짐승과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자연 세계가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셨지만 인간들이 자기 욕심에 치우쳐 자연의 질서를 깨뜨렸을 때 자연 세계는 무질서하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이상 기후의 영향이라고 하면서 무질서함으로 인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질서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광야교회 때에도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시고 각자에게 다 중요한 일들을 맡기셨다.
본문에서는 증거의 성막과 또 성막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오고 있는데 성막이나 회막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레위 지파 사람들로 하여금 회막을 관리하는 직책을 감당하기 위하여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들을 계수하는 데서 제외했다. 이스라엘은 시내 광야에서 머무는 동안 회막을 완성했다. 그리고 회막을 치고 걷는 일이든지 운반하는 일이 레위 지파에게 맡겨진 임무였다. 이 회막이 솔로몬 때에 성전으로 바뀌게 된다. 성전에서 제사와 기도를 드렸는데 성전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중심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속에서도 성전이 완공되기 전 만들어진 회막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감당했다.
오늘도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모이고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배우기도 한다. 매일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 해도 우리 마음속에서 나는 수원 새빛 교회에 다니는 성도라는 믿음이 나를 믿음의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게 한다.
성도들의 신앙 중심이 교회라고 할 수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회막은 아주 중요한 신앙의 중심이었고 그 회막 관리가 레위 지파에게 맡겨진 사역이었다. 그렇다면 레위 지파가 맡은 그 일만 중요하고 다른 지파의 역할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바울은 교회를 말하면서 사람의 몸에 비유하고 있다.
고전12:17절 “만일 온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예를 들어 눈은 좋은 것을 보고 피곤하면 눈을 깜빡이거나 감을 수도 있으니 부럽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해야 하는 손이나 발이 다 눈이 되겠다고 해서 눈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몸에 눈이 머리에도 있고 뒤통수에도 있고 가슴에도 있다고 하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의 각 기관은 다 중요하다. 양말과 신발 속에서 하루 종일 갇혀 있는 발가락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소중하다. 만약에 엄지발가락이 없다고 하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다. 몸의 모든 기관이 다 중요하듯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각 지파는 다 소중하다. 다만 저들이 하는 일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늘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다 소중한 존재들이고 우리가 봉사하고 있는 일들도 다 귀하고 중요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며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사명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도 않고 또한 한다고 해도 특별히 티도 나지 않으니까 대충해도 된다는 생각은 버리기를 바란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기에 맡겨진 일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레위 지파를 구별하신 이유는 일반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하기 위함이다.
본문 52-53절 “이스라엘 자손은 막사를 치되 그 진영별로 각각 그 진영과 군기 곁에 칠 것이나 레위 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51절 하반 절에서는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일지니 라고 되어있는데 그것은 외인이 이방인이나 다른 사람들로 이해할 수 있지만 53절에 보면 외인을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이라고 말씀한다. 다시 말하면 회막에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도 함부로 근접해서는 안 되고 또 레위 지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근접을 막아야 한다. 그 이유는 함부로 회막에 접근했다가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이다. 회막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임재의 상징이었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사람 이외에는 출입을 삼가야 했다.
회막이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출 40:34절에 보면 성막이 세워질 때 백성들은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한 것을 보았다.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로부터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의 종류와 규례들을 자세하게 배웠다. 그리고 레 8장에 보면 7일에 걸쳐서 아론과 그의 네 아들들이 제사장의 위임을 받았다. 그런데 성경은 한 가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직무와 관련하여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레 10장에 보면 제사장으로 위임받았던 아론의 장자와 차자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 하다가 성소에서 죽었다.
이 사건은 장차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큰 경고가 되었고 물론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다. 하나님은 결코 함부로 인간들의 생각에 좋은 대로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불과 얼마 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특별히 레위 지파에게 주신 외인이 가까이 오면 죽임을 당한다는 말이 무섭고 엄중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진노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레위 지파를 통해서 회막 주변에 머물게 하면서 출입을 통제했다.
상황 파악하지도 않고 레위 지파를 하나님 곁에 두시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하나님 사랑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지나 실수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레위 지파를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를 회막 곁에 두게 하신 것은 레위 지파 개인의 유익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막을 관리하고 더 나아가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 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 안의 택하신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사랑하신다. 그들이 다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예비하신 복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에 지도자 그룹을 세우셔서 성도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잘못된 길로 가거나 곁길로 갈 때에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세운 신앙의 리더들을 통하여 일하게 하신다.
교역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고 저들은 자기의 안위나 사사로운 유익보다는 성도들의 영적 안위를 보살피며 잘못된 길을 걷지 않게 하는 것을 우선 적으로 행한다. 그러므로 교역자를 위시한 리더 그룹을 보면서 어떤 특권계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나 불신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하고 성도들을 위하여 구별 된 직분이라는 것을 알아 서로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또 성도들의 삶에 더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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