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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4) 신앙생활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2026-10-02 13:56:25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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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4)

신앙생활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민 2:32-34절

260927주일낮설교

지난 주는 일 년 정도 머물렀던 시내 광야를 떠나기 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싸움에 나갈 만한 사람을 지파별로 계수하는 가운데 레위 지파는 그 계수에서 제외했다. 그것은 레위 지파를 향한 특별 대우가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이 계시는 전인 회막을 관리하는 직책 과 회막에 다른 백성들이 근접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 레위 지파에게 부과된 임무였고 이 일에 전념하도록 제외했다고 말씀드렸다.

오늘 본문은 2장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시간 관계상 민 2:32-34절만 읽었다. 2장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회막을 중심으로 머물 때 각 지파가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 것과 또 출발할 때는 어떤 순서를 따라 행진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민수기 1장을 통해서 그 안에 흐르고 있는 중심 사상이 하나님의 질서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단순히 애굽을 출발하여 가나안 땅을 찾아가는 피난민이나 순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로 인정해 주셨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면서 오늘 2장을 통해서도 진을 치거나 행진하는 모든 것에서 질서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다시 한번 하나님의 질서는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자. 하나님의 질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질서 정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질서라고 한다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이나 누나 그리고 동생의 순서를 위계질서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들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람들이 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 거부하시거나 불필요하다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이나 세상의 방식을 무조건 교회 안으로 가지고 와서 그렇게 하는 것이 맞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성도 된 자들은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신앙생활은 세상의 방식이나 세상에서 행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질서라는 것은 세상에서의 행하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따라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질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2 장에서도 회막을 중심으로 각 지파대로 진을 형성하여 머물거나 아니면 구름 기둥이나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행진할 때도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움직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질서는 사람의 생각이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대로 행하는 것임을 기억하여 우리 신앙생활 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믿음의 자세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회막을 중심 한 이스라엘 지파의 진의 위치와 행군 대열을 살펴보자.

 

민 2:2절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의 진영의 군기와 자기의 조상의 가문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

 

인구 계수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도록 지시를 받았다.

민2:1-16절까지에는 회막을 중심으로 12지파가 동서남북으로 위치해서 진을 치고 있다.

각 지파는 깃발을 세우고 자기 가문을 나타내는 표시를 했다. 지파별로 어떤 모양의 군기 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창 49장에 언급된 야곱의 축복을 바탕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창 49:9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 지파의 기호는 아마도 사자 그림 이었을 것이다. 13절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 까지 리로다.” 스불론의 기호는 배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지파의 개념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지파별로 색깔과 문장을 활용했다고 볼 수 있다. (도표)

이스라엘의 조직 가운데 지파별로 움직이고 세 지파를 묶어서 진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각 지파가 사방으로 진을 쳤는데 동쪽으로 유다 지파 그리고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위치해 있고 남쪽에는 르우벤 지파를 위시해서 시므온 갓 지파가 위치 해있다. 서쪽에는 베냐민 지파와 므낫세 그리고 에브라임 지파가 위치했다. 마지막 북쪽에는 납달리 지파와 아셀 지파 그리고 단 지파가 위치해 있다.

 

이어서 17-31절에는 레위 지파를 포함한 열두 지파가 행군할 때의 순서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순서에서 우리는 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각 세 지파가 한 진영을 형성하여 출발하는 데 동쪽이 가장 우선 적으로 행군한다고 볼 수 있다. (도표)

이스라엘은 동 남 서 북쪽에 위치한 지파가 차례대로 이동했다. 그리고 중간에 성막과 성물이 따랐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장자와 차자가 동쪽에 오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제일 선두에 서야 할 1진에 장자인 르우벤과 차자인 시므온을 볼 수 없다. 셋째인 레위 지파를 건너 넷째인 유다 지파가 장자 지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은 모두 레아가 야곱에게 나은 아들들이다.

그리고 르우벤과 시므온은 두 번째 진인 남쪽에 갓 지파와 함께 위치 해있다. 르우벤은 장자였을지라도 아버지의 첩인 빌하를 통간 함으로써 나중에 야곱의 축복에서 장자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둘째 시므온은 셋째인 레위와 함께 세겜 에서의 살육에 적극 가담한 일로 역시 장자 권을 얻지 못하게 된다. 결국 넷째 아들인 유다에게 장자의 명분이 주어진다.

육신 적인 정자 권과 영적 장자 권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의 아들로서 육신 적인 장자는 이스마엘이지만 실제적인 영적 장자는 이삭이었다. 이삭의 아들은 에서와 야곱이었고 장자는 에서였지만 영적 장자는 야곱이었고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면서 그의 12 아들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들이 되었다. 육신의 장자 권이 근래에 와서는 의무나 책임에 있어서 매우 불분명해지고 있다. 상속에 있어서도 특별한 혜택도 없다. 그러나 육신 적인 장자 권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특혜도 없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영적 장자 권을 얻기 위해 야곱처럼 힘쓸 수 있기를 바란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여 영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더 사모하는 마음으로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의 기도는 단순히 입으로만 하는 기도는 아니다. 생사를 앞에 두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단호한 믿음의 자세로 간청했다. 창 32:25절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영적 장자 권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하나님의 복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 믿음의 열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줄 믿기 바란다.

영적 장자 권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이 우리 심령과 삶속에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2. 이스라엘은 예배 중심의 공동체였다.

 

민 2:17절 “그다음에 회막이 레위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어 행진하되 그들의 진 친 순서대로 각 사람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들의 기를 따라 앞으로 행진할지니라”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이 지파의 순서를 따라 행진할 때 성막이 중앙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행진 할 때뿐 아니라 그들이 진을 치고 머물 때도 동서남북으로 3 지파씩 위치했는데 그 중앙에 있는 회막을 중심으로 진을 형성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2절 하반절에는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치라고 명령한다.

회막은 하나님이 계시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시고 안 계신 곳이 없지만 특별히 출 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회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회막은 안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다. 성소에서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지만 그 안쪽에 있는 지성소는 구별된 장소로 법궤가 위치 해있다. 그리고 법궤 위에는 천사 모양을 한 스랍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의 임재를 말씀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에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라고 하는 특별한 형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했다. 하지만 날마다 아침과 저녁에 드려지는 상 번제나 그리고 월삭과 각종 절기를 지켜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5대 제사의 방식에 따라 합당한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결 하게 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삶에서 제사는 어떤 특별한 순간에 드려지는 특별 행사가 아니었다. 삶의 모든 것이 제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이스라엘의 삶은 제사 중심의 삶이었고 거기에는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이 있었다.

 

회막이 레위 인의 진영과 함께 모든 진영의 중앙에 있었다는 것은 단순히 위치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심에 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한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산다는 것은 회막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제사를 드리며 기도함으로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정결함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섬기며 예배드리기를 원하신다.

롬 12: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참되게 예배드리는 것이다.

요4: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마지막 때가 될수록 점점 미약해지는 것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다. 예배 드리는 것을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두며 그러기 위해서는 열심히 모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요구를 거스려 점점 모이는 일에 등한히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사람과의 교제와 어울림을 추구하고 있다.

히 10: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신앙생활의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예배라는 것을 인식하여 예배에 최선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군대로 부른 이스라엘을 통하여 그 안에 하나님의 질서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질서는 세상의 법칙이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자기에게 참되게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 다른 사람이나 교회가 세상의 조류에 따라 흘러간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예배자가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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