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쁨의 플랫폼(6)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에
빌 1:22-26절
250810주일낮설교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옆 사람에게 축복하기 바란다.
척 스윈돌 목사님의 글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떤 남자가 사막에서 길을 잃고 물 한 모금을 찾던 내용이다. 사막 길을 걸어가는데 가도 가도 모래땅이고 물이 없다. 정신이 혼미해져 가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며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오래된 오두막집을 발견했다. 오두막 집의 이곳 저 곳을 둘러보다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녹슨 펌프가 눈에 들어 왔고 그 옆에 먼지에 쌓인 주전자를 발견했다. 물이 든 주전자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면서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글이 적혀 있었다. ‘이 물주전자에 담긴 물을 모두 사용하여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추신: 떠나기 전에 다시 이 물주전자를 반드시 채워놓을 것.’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니 주전자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주전자에 들어 있는 물로 자기 자신의 목을 축일 것인가 아니면 펌프에 마중물로 붓고 펌프질을 해야 되나 하는 결단의 순간이었다. 확실한 것은 주전자의 물로 자기 목을 축이면 살 수 있지만 이것을 녹슨 펌프에 부어서 펌프질을 했는데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자기는 죽을 수밖에 없다. 고민 끝에 주전자의 물을 펌프에 붓고 재빠르게 펌프질을 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계속 펌프질을 했다. 그러자 물이 따라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는 펌프 물을 마시고 마셨다. 그리고 다음 여행자를 위해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두었다. 그리고 이런 메모를 남겼다. ‘정말 잘 될 것입니다. 제 말을 믿어 주세요. 당신이 이것을 다 펌프에 쏟아 부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가 어떤지 알고 선택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든 사람이 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선택 하던지 자기 마음이지만 결과에 대해서도 역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이 땅에서 많은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나 지식을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밑 빠진 독에는 아무리 물을 부어도 다 새어 나가 채울 수 없듯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 역시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의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소유하면 할수록 더욱 갈증을 유발시킬 뿐이므로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채워서 행복해 하거나 만족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제거하면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는 것은 죽음이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지만 두려워하거나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바울에 있어서 죽음이란 주님을 만나는 좋은 기회이기에 마음 같아서는 죽는 것이 자기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사는 것도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유익하기 때문에 그것도 상관없다고 고백한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주어진 삶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될 것인가를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선택의 기로에서 죽음의 문제에 대해 자유로웠다.
본문 22-23절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요 무신론자인 볼테르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부인에게 말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소. 내 생명이 6개월만 연장된다면 나는 내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절반을 내놓겠소. 나는 이제 그만 두렵고 떨리는 지옥으로 가게 되었소. 당신도 가게 될는지 모르오.” 그리고 임종 때에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리스도여, 나를 도와주소서.” 평생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버림을 받고 마지막에 이르러 시간이 다 되었을 때에 이렇게 부르짖었다.
결국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가장 심각한 고민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고 말한 세익스피어 작품속의 햄릿의 고백은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런 고민 하는 사람들은 정작 많지 않다.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정작 죽음 뒤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다. 쇼핑센터 가서 옷을 하나 고를 때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다. 갖은 신경을 쓰고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을 계속 반복하면서 신경을 쓰지만 내가 죽고 난 뒤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 없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지만 그 죽음이 내 앞에 닥친 문제가 아니라 멀리 있는 것이고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것처럼 그냥 지나쳐 버린다.
우리는 지난주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서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집례하면서 딸 같은 자매를 떠나보내며 참석한 모든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다. 어떤 사람은 어렸을 때를 추억하며 내가 가르쳤고 또한 어떤 사람은 나와 함께 교회를 섬겼다는 추억이 떠 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더했다. 40중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은 나이도 없고 순서도 없다는 말이 더욱 실감나기도 했다. 이러한 일은 90이 넘은 나이에 있는 어르신들에게나 있는 일은 결코 아니다.
본문에서 이러한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자유로운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 사느냐 죽으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 세상을 떠나서 죽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죽어야 할 텐데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이 드신 분들의 거짓말하고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양반 문화가 내면에 깔려 있다. 그래서 냉수 마시고도 이빨 쑤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고 어르신들이 이것 좀 드세요 라고 할 때 나는 됐다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라 라고 한다고 해서 안 드리면 서운해 한다. 나이 드신 어르신이 빨리 죽어야 하는데 라고 계속 이야기 한다고 그 앞에서 그러면 빨리 죽으세요 라고 했다 가는 난리가 난다. 어르신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는 반어법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반어법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천국에 대해서 경험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많은 영적 체험을 했다. 그는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온 영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은 천국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고후 12:2절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더 나아가 신령한 영적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고후 12:7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영적 체험으로 교만해지지 않기 위하여 늘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살았지만 개인적인 체험으로 스스로는 천국에 대한 확신과 영광스러운 천국 입성에 대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에게 죽음이 오게 된 것은 죄 때문이다. 범죄 이전의 아담과 하와는 영원토록 에덴에서의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범죄 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범죄 한 그들에게서 영생을 거두셨다.
창 3:24절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죄는 죽음을 가져왔고 죄로 인한 고민은 결국 죽음과 연결될 수밖에 없지만 죄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영생을 얻을 수 있는데 우리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해결해 주셨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 얻게 되는 줄 믿기 바란다.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 얻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 얻는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나를 다시 살리셔서 천국 시민권자가 되게 해주신 것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탄이 죽음으로 우리를 위협해도 거기에 미혹당하지 말고 담대하게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 믿는 우리 성도들을 어떤 것으로도 정죄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구원받은 자로서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힘 있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만족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았다.
본문 24-26절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지내는 답답한 현실 보다는 개인적으로 유익하고 영광스러운 천국 입성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빌립보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바울이 함께 하면서 자기들을 지도해주고 영적으로 보살펴 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개척해서 세운 교회로 아직 신앙이 연약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같은 영적 지도자가 필요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믿음의 진보를 위하느냐 아니면 바울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바울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이 땅에서의 많은 수고와 괴로움 보다는 육신의 생명이 끝나서 그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해서 개인의 처지보다는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영적 돌봄이 더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울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하기보다는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한 길을 선택하기를 원하고 있다.
막 10:45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섬김 받고 높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신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주님이 행하신 삶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삶은 나의 안위와 만족만을 추구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눅 12:16절 이하에 보면 부자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여러 해 쓰고도 남을 만큼의 큰 농사를 짓고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제는 평안히 먹고 즐기자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사람에 대해서 어리석은 부자라고 말씀하는데 이 부자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만족과 자기 배만을 위하는 삶을 목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세상과 교회의 차이를 든다고 하면 세상은 자기 자신이 없으면 그 단체가 존재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교회는 나는 연약하고 쓸모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고 또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가 되었으니 이제는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각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천국과 지옥에는 자기 팔만큼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다. 그런데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다 삐쩍 말랐는데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다 보기 좋게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유는 지옥에는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가져다가 자기만 먹으려고 하니까 다 흘리는데 천국에는 앞에 있는 상대방에게 서로 먹여 주기 때문이었다.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주의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주의제자들임을 깨닫고 우리의 삶에 이런 향기가 풍겨 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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