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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8) 교회는 하나 되는 공동체
2025-08-26 09:22:25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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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플랫폼(8)

교회는 하나 되는 공동체

2:1-4

250824주일낮설교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옆 사람에게 축복하기 바란다.

어느 마을에서 가장 무거운 썰매를 끌 수 있는 건강한 말을 뽑는 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에서 1등을 한 말은 2,0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다. 그리고 2등을 한 말은 1,8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다. 이 두 말의 주인들은 만약 두 말이 힘을 합하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끌 수 있을 지 궁금했다.

그래서 두 말이 함께 썰매를 끌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5,5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 수가 있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나누어 함께 하기를 거부할 때가 있다.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일을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참으로 비능률적인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불어서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며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듯이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허물과 약점 그리고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나고 성숙되기 위해서 훈련받는 장소다. 왜 갈등이나 경쟁 그리고 비판을 하게 되는가 하면 하나님과 교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거나 또는 어떤 일을 독자적으로 함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는 가난한 자를 돕고 섬기는 사회봉사 단체가 아니다. 비도덕적인 사회 속에서 단순한 윤리 운동을 실천하는 곳도 아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섬기며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개인이 아닌 교회를 통해서 드러내는 곳이다.

지상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로 세워져 가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영적으로 매우 성숙한 사람들도 있고 아직 갓난아이 같이 연약한 사람들도 함께 공존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 십자가의 사랑을 품고 용납하고 받아주고 품어 주어야 한다.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오늘 본문에 나타난 빌립보교회는 다툼과 갈등이 있었고 원망과 시비가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의 주된 내용은 한마음을 이루어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되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된 삶을 살 수 있다.

 

본문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마음을 같이하여는 문자적으로 '생각을 같이 하여'라는 의미로 같은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지정의를 통한 전 인격적으로 행하라는 말이다.

같은 사랑을 가지고 라는 말은 마음을 같이하여 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사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중심이 사람이 되다보면 서로 나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우리 주님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주님 만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럴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한 자리에서 같이 자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 속으로는 각기 딴 생각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동상이몽이라고 한다. 동상이몽이 특별한 T.V.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흔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동상이몽이 되면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없다.

뜻을 합하며 라는 말은 헬라어로 "한 호흡의, 같은 마음을 지닌"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로서 교회를 이룬 성도들은 각각 개성이 다르고 출신 배경이 다를지라도 마치 찬양대가 찬양할 때 호흡을 같이하듯이 하나 된 호흡과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것은 계획이나 뜻이나 생각 등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이 역시 내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뜻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생각과 목표가 일치된 마음을 가질 때 하나가 될 수 있다.

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마음을 같이 하여를 반복하는 표현으로 어떤 것 하나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4:4-6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우리는 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성령도 한 성령을 받고 세례도 한 이름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받았다. 믿음의 대상도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생각과 목표에서 일치된 마음을 가져야 하나 된 삶을 살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자기를 중심해서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을 중심해서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도 나도 자기를 중심해서 하나가 되기를 원하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분오열 나누어질 수 밖에 없다. 고린도 교회가 나는 바울파 나는 베드로 파 나는 아볼로 파 나는 그리스도 파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는 결코 사람이 중심이 될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해서 한 마음으로 서로 연합해야 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유사한 의미의 말을 네 번이나 반복함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가정에서도 부모나 자식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중심할 때 하나가 될 수 있다.

아버지라고 나를 중심으로 라고 했다가는 꼰대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를 중심으로 내지는 헌금을 많이 하는 장로님을 중심으로 아니면 말을 잘하는 권사님을 중심으로 더 나아가 인기 있는 집사님을 중심으로 친한 친구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줄 믿는다.

 

2. 나 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길 때 하나가 될 수 있다.

 

본문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1) 자기보다 남을 더 높이고자 할 때 찾아오는 방해요소가 있다.

 

그 첫 번째 요소로 다툼을 들고 있다.

다툼이라는 말은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욕구나 천박한 이기주의 내지는 당파심을 말한다. 역사 속에서 사탄은 아담 이후 끊임없이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이기심으로 분쟁을 일으켜 교회를 분열시켰다.

천박한 이기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분열은 멈추지 않는다.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맨날 남의 허물만 들추어내며 비판만 한다. 내 이익만 충족되면 나라가 망가지고 교회가 망가져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려고 사명감을 가지고 교회를 비판하고 직분 자를 비난한다. 그럴 때 교회나 사회가 하나가 되어 잘 될 수가 없다.

남을 비판함으로 자기의 옳음을 입증하려고 하면 교회는 늘 파당이 생기고 분열될 수 밖에 없다.

더러운 물은 휘젓는다고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맑은 물을 넘치도록 흘러 보내면 결국 깨끗해진다.

 

둘째는 허영이다.

허영이라는 단어는 공허한 견해 잘못된 생각이라는 의미가 있다. 자만심과 망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헛된 영광 즉 자기 영광을 구하게 되면 교회는 하나가 될 수가 없다. 헛된 허영심이나 자부심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생각하는 과대망상이나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헛된 생각이다.

허영심은 결국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보고 자신은 신앙의 차원이 다르다는 영적 교만에 빠지게 하여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고 갈라지게 만든다. 동굴 안에서 조그마한 구멍을 통해 하늘을 보며 그것이 전부라고 주장하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을 근거로 남을 정죄하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2)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적극적인 자세는 겸손이다.

 

3절 하반 절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말씀한다.

 

겸손한 마음은 자기의 무가치함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시고 구원하신다고 말씀하며 비천한 자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며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다. 겸손이야 말로 기독교 공동체의 성공을 보장하는 지름길이 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중 하나이며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이기도 한 벤자민 프랭클린 대통령이 있다. 그는 미화 100달러 지폐에 초상화가 그려져 있을 정도로 미국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꼽힌다.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신앙 안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인데 그 비결은 바로 겸손이었다. 어린 시절 조심하지 않다가 문 인방에 머리가 크게 부딪쳐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중요한 교훈을 주셨다. “오늘의 아픔을 잊지 말고 항상 머리를 낮추고 허리를 굽히며 겸손한 자세로 살거라.” 그래서 그는 그날부터 겸손을 평생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 마음에 예수님이 항상 좌정해 주셨고 그는 지혜와 명철을 갖춘 인물로 역사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조금 헌신하고 열심이 있고 조금 많이 알고 가지고 있다고 교만해서는 안 된다. 교만은 하나 됨을 파괴하는 독소일 뿐 아니라 사탄이 하나 됨을 파괴시키는데 사용하는 최첨단 무기인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솔로몬도 교만으로 망했고 웃시야 왕도 교만해서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하다 나병에 걸려 죽었다. 어거스틴은 겸손은 모든 미덕의 바구니라고 했다.

이 말은 모든 미덕은 겸손의 바구니에 담길 때 아름답고 귀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다툼이나 허영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나보나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함으로 하나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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