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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7) 겉과 속이 한결같이 깨끗해야 한다.
2026-10-24 09:18:29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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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세상에서 걸어야 할 신앙 여정(7)

겉과 속이 한결같이 깨끗해야 한다.

민 5:1-4절

261018 주일 낮 설교

채소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비교해 보면 수박 같은 성도와 비트 같은 성도가 있다고 할 수있다.

수박은 우리가 대체 적으로 알고 있듯이 두꺼운 초록색 껍질 안에 빨간 속살이 있는 과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성도 같은데 속을 보면 여러 가지 오물과 쓰레기로 범벅되어 있는 사람으로 수박 같은 성도라고 할 수 있다.

비트는 겉에 드러난 색깔도 빨갛고 껍질을 벗기면 안에도 역시 빨간색을 띠고 있다. 다시 말하면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나 그의 속을 들여다보아도 별 차이가 나지 않는 비트 같은 성도가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땅으로 나아갈 때에 무질서한 모습이거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 아니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또 머물 때도 질서 있게 진을 쳤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 군사로 행진했고 성막 중심의 예배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다. 4장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적 공동체이면서 예배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외형적인 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가져야 할 하드웨어 즉 컴퓨터를 구성하고 있는 기계장치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5장에서부터 다루고 있는 것이 바로 내적인 부분들을 말하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되어있다면 이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할 때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겉으로 구성 되어있는 기계장치도 중요하고 내적인 프로그램인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타조알 1개의 무게는 2Kg이라고 한다. 이는 계란과 비교도 안되는 크기다. 배고픈 사자가 다른 먹잇감이 없을 때 타조알에 눈독을 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애써도 사자는 타조알을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입으로 깨물기는 너무 크고 굴려서 깨뜨리려고 해도 워낙 단단해서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조 알은 이중 구조로 되어있다. 겉껍질은 깨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지만 껍질 내부는 연약한 새끼가 부리로 쪼아서 깰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는 것이다. 타조알은 첨단 과학이 쉽게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워낙 출중해서 그 안에 든 생명은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그렇게 보면 외형적인 껍데기를 무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이 외형적인 면에서 질서와 훈련을 통하여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외적인 형태를 갖춘 이스라엘 공동체였음을 말하면서 5장에서는 내적인 면에서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20세 이상의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들을 계수하고 진의 형태를 갖추어도 내부가 엉망이면 광야 행군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내적으로 온전한 형식를 갖추기 위한 정결을 말씀하고 있다.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이미 레위기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왜 다시 반복하는가 하면 이론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내용을 현실적으로 적용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이 계시는 회막은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정결해야 함을 말씀드렸다.

레11:45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오늘 본문에서도 거룩과 정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신앙공동체는 어떠해야 하는지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는 거룩해야 한다.

본문 3절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이 말은 남자나 여자나 죄를 지은 자는 가릴 것 없이 다 진 밖으로 내보내어 내가 머물고 있는 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악의 더러움과 함께 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거룩해야 한다. 거룩은 정함에서 나온다. 정하다는 것은 맑고 깨끗함을 말하는데 우리 성도들의 삶에도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이나 속 마음도 한결같이 맑고 깨끗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거룩한 척하고 속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겉과 속이 다른 신앙의 모습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생각에 치우쳐서 하나님께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릴 때 더 좋은 제물 더 비싼 제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해 주실 것으로 착각했다. 하나님의 판단과 사람의 생각이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은 자기 각자의 생각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생각이 옳은 것인가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생각과 판단이 바르고 정확하다. 그러면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맞추어 나가야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제쳐두고 자기 생각에 치우쳐서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며 행동했다.

 

하나님은 거룩을 요구하셨고 거룩은 구별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우상들과 구별하여 하나님만 섬기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나 세상 사람들의 길로 가지 말아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기며 예배하는 언약 백성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길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길을 걸어갔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바알이나 아세라와 같은 우상숭배에 젖어있었다.

이스라엘은 내적으로 우상 숭배의 무서운 죄를 저지르면서도 겉으로 안 그런척하는 위선의 탈을 쓰고 값비싼 제물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헤아리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서로 간에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다. 사랑의 관계에 사랑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나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거룩은 하나님만을 사랑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프랜시스 쉐퍼는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가였다. 그분의 저서는 많은 이에게 읽혔고 삶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말년에 암에 걸려 병마와 혹독하게 싸웠다. 하지만 낙심한 채 머무르지 않았다. 생의 마지막을 자신이 사랑했던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설교를 하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의 캠퍼스를 다녔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젊은이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그것은 불신자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행복을 삶의 목표로 갖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구할 바가 못 됩니다.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행복을 구하지만 거룩함은 구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오늘 이 시대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은 어떤가? 꿈과 비전은 구하지만 거룩함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진 것 같다. 우리 한국교회가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의 풍성함과 행복은 구하지만 거룩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육신 적인 삶의 만족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함을 추구하며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쓰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2. 거룩은 죄악과 함께 할 수 없다.

본문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환자와 유출 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5장을 시작하면서 먼저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부정한 자는 다 진 밖으로 내보내라고 명령한다.

세 가지의 경우를 말하면서 먼저 나병을 말하고 있는데 실제는 나병을 포함한 광범위한 피부질환을 말한다. 이 환자는 하나님의 진노라고 여겼고 전염성이 강했기에 진 밖으로 내보내라고 한 것이다. 또한 유출 병을 부정한 것으로 여긴 것은 이것이 성적 방종으로 인하여 생긴 부정한 병이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부정하다고 보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을 말할 때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저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것과 당시에 유대인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죽음을 죄 값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보았기에 그것을 부정하다고 인식했다.

어떤 형태로든 부정한 자는 정한 무리 가운데 함께 할 수가 없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진영은 거룩한 곳이기에 부정한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으므로 내보내라고 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진영의 정결을 유지하기 위함과 동시에 부정으로 상징되는 죄에 대한 징벌을 의미한다. 부정한 자를 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단순한 추방이 아니라 무서운 형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의 단절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그들에게 은혜와 복을 허락하신다. 진 밖으로 추방된 자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험한 광야와 같은 세상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없이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너무 괴롭고 힘들다. 야생의 세계에서도 무리나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새끼는 결국 다른 적들의 공격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연약한 인생은 이 험악한 세상에 보호자가 되시고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탄은 우리를 미혹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죄 가운데 거하게 만드는데 죄를 멀리해야 한다.

사 59:2절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죄를 범하고 있다. 죄는 단순히 세상의 법을 어기거나 세상의 기준에서 어긋난 것만 죄라고 말할 수 없다. 성경에서 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피며 그것이 우리의 삶에 나타난다고 하면 감추거나 아닌 것처럼 지나치려 하지 말고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고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죄인된 모습에 대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 53: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의 뜻이나 생각을 따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제 길을 가는 것을 죄악 된 길이라고 말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죄악 된 모습을 하나님을 버린 것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삶의 만족을 얻기 위해 웅덩이를 판 것이라고 하는데 웅덩이를 판 것이 무슨 죄악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의 진의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를 의지하며 자기 교만에 빠진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며 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찾아 회개하며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란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는 것을 깨달아 늘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통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통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평안의 복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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