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쁨의 플랫폼(13)
바른 신앙생활을 하라 십니다.
빌 3:1-3절
250928주일낮설교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서로 축복하며 인사하기 바란다.
결혼이라는 것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서로 사랑을 싹틔워 함께 하기를 약속하고 그 약속대로 한평생을 함께 동행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안타까운 것은 서로 만나서 사랑에 눈이 멀어서 함께 하기로 약속해 놓고 살면서 그 약속을 깨뜨린다. 평생을 함께 동행하기로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이혼이다. 우리의 과거 어른들은 서로 만나서 사랑이 싹트기 전이라도 부모의 강압에 의해서 맺어졌다 해도 아내는 한평생 남편을 따랐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여 그런 것은 다 옛말이라고 해도 어쨌든 부부로 맺어진 관계는 한평생 함께 동행 하는 발걸음이 되어야 한다. 사실 결혼생활이라고 할 때 두 사람의 마음이 늘 맞고 관계가 늘 좋아서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을 수 있지만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참고 헌신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마치 결혼생활과 유사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셔 들이는 것이다. 그냥 모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마치 나는 신부요 주님은 신랑으로 모시고 한평생 함께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 잠시 스쳐지나가는 관계로 만난 것이 아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사 나를 찾아오셨고 믿음의 동의로 내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는 마치 혼인한 관계처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생활에 있어서 한 평생의 동행이 요구되듯이 신앙생활도 영원한 동행이 요구된다. 주님이 좋다고 고백했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내 앞에 세상이라는 존재가 찾아와서 추파를 던지며 유혹하면 어느새 주님의 손을 놓아버리고 세상과 짝하여 하나가 된 것처럼 세상에서 방황하게 된다.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탕한 아내 고멜이 이런 저런 핑계로 자꾸 남편을 떠나 세상을 향하여 나갈 때에 다시 가서 찾아오듯이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나와 함께 가자고 부르신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신앙생활이란 감정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약속한 대로 어떠한 유혹이나 방해가 있어도 주님과의 약속을 따라 한평생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임을 믿기 바란다.
주님과 한 평생 동행 할 때에 마지못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함께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우리에게는 평탄함과 즐겁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즐겁고 좋은 일 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위기가 더 많이 찾아온다. 삶이 힘들고 어려운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의 환경을 바라보면 짜증만 나고 삶이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경은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한다.
본문 1절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하나님은 택한 자녀들이 기쁨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근심과 원망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살전 5:17절 “항상 기뻐하라”고 하신다. 주님은 성도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지만 우리의 삶의 환경은 그렇지 않다. 우리도 늘 기쁨의 조건이 넘친다면 항상 기뻐할 수 있겠지만 늘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질병이 찾아오고 죽음이 찾아오고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과 위기 상황에서 기뻐할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런 것은 우리 인생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의 처한 환경은 죽을 지경이지만 기뻐하라고 권면한다. 그런데 오늘 1절의 말씀을 보면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자기의 처한 환경이나 형편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어 주님 안에서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영혼이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 안에 온전히 거하면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이렇게 기쁨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인줄 믿기 바란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는데 피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요소가 있다고 말씀한다.
1. 피해야 할 요소가 있다.
본문 2절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기쁨의 충만한 신앙생활을 이룸에 있어서 삼갈 것에 대해서 삼중적인 표현으로 언급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삼중적인 표현이라고 해서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듭 반복하는 것은 강조적인 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악한 행위를 일삼는 것에 대한 반복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는 우리의 상황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에는 개가 있는데 그것은 주인이 없이 무리를 지어 떠돌아다니는 들개들을 말한다. 들개들은 사람들에게 조차 피해를 주거나 손해를 끼치는 존재로서 하나님을 모르고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이방인 같은 존재를 말한다. 주인 없는 존재처럼 자기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악한 존재를 말한다.
행악하는 자도 같은 의미의 말이다. 늘 악한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제 맘대로 살아가는 그런 자들을 삼가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삼가야 할 것이 있는데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을 삼가는 것이다.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 자해하는 것을 말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을 개역성경에서는 ‘손 할례 당을 삼가라’ 라고 되어 있다. 손 할례 당이라는 것은 사람의 손으로 행한 육신의 할례를 말한다. 할례의 본질적인 의미와 정신은 상실하고 형식만 남아 있는 표면적 형식적 신앙을 말한다.
이렇게 형식적인 신앙의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을 말한다.
기쁨의 참된 신앙생활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며 마치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인양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는 이방인의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죄에서 자유 하는 몸이 되었고 천국백성이 되었으니 이제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자유를 누리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사는 방종의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규범을 따라 살아갈 때에 진정한 자유와 만족과 기쁨이 넘치는 줄 믿기 바란다.
마치 물고기가 자유 함을 얻었다고 물 밖에서까지의 삶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물고기가 자유 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물 안에서 헤엄칠 때 진정한 자유와 만족함을 누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할 때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는 줄 믿기 바란다.
요 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 안에 거할 때 평안이 있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삶을 누릴 때 우리에게는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충만하게 샘 솟게 되는줄 믿는다. 주님이 우리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며 주님이 주시는 참된 만족과 기쁨의 충만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본문 3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주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 없이 자기 위주의 삶을 살지 말라고 하면서 더 나아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하는데 먼저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봉사라고 할 때 그것은 영어로 Service를 말하는데 이는 말 그대로 봉사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예배를 말할 때 주로 Worship을 말하는데 봉사라는 Service에도 예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봉사라는 단어를 예배라는 말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예배가 성령에 의해서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내가 예배드리려고 하면 시간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의지나 마음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예배를 드릴 때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고 우리는 기쁨으로 예배드릴 수 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예배드리기를 원하며 예배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 믿는다. 예배에 승리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것이다.
요 4: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 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로 말씀한다.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들이나 행악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자연히 우리의 주인 되시는 주님만을 자랑하고 높이며 살아가는 줄 믿는다.
하나님이 자기 주인인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도취에 빠지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인양 자기 마음대로 행하면서 자기만족을 추구한다. 자기가 제 인생에 주인으로 착각하기에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자기를 들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삶을 경고하고 있기에 우리의 자신들을 늘 돌아보아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진정 나의 주인 되시고 전부가 되시는 주님만을 높이며 자랑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네 명의 할머니들이 자식자랑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첫 번째 할머니가 우리 아들은 교회 목사인데 남들은 우리 아들더러 오, 고귀한 분이라고 하지.
그러자 두 번째 할머니가 우리 아들은 추기경인디 남들은 우리 아들더러 오, 거룩한 분이라고 그러는데.
그러자 세 번째 할머니는 워매 우리 아들은 교황이여! 남들은 내 새끼더러 워매, 고결한 양반이라고 한다니까. 이젠 그 이상 더 높은 사람은 없지.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
특별히 자랑거리가 없어 고민을 하던 네 번째 할머니가 이윽고 하는 말이 “그런데 이걸 우짜노. 우리 아들은 숏 다리에 곰보에다가 뚱보에 정말 못생기기까지 했으니. 그래도 누구든지 우리 아들을 보는 순간 한 결같이 하는 말이 있지!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이라는 표현은 영어로 으악 또는 이걸 어째라는 표현이지만 네 번째 할머니는 말 그대로 오 나의 신이여 하는 말로 부르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식 자랑하라고 하면 날 새는 줄 모르는게 우리 부모들이다. 그러나 우리 자랑은 오직 주님만을 높일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은 기쁨의 온전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 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잘 분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성도가 되어 주님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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