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쁨의 플랫폼(10)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빌 2:12-14절
250907주일낮설교
저의 청년 시절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러면서 따라오는 것이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생의 구원을 받은 후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 내지는 무언가 부족함이 있는 것처럼 인식했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서 강조 했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배워서 가지고 있던 신앙의 자세는 교회는 거룩하기에 교회에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신학 교육은 초창기에 들어온 선교사에게서 신학 교육이 이루어 졌는데 선교사들은 신학적인 배경 보다는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경건한 선교사들이었다. 그래서 신앙 면에서는 보수적이었고 청교도적인 신앙의 배경이 있었다. 선교를 목적한다는 것은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다보니까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짧은 메시지라도 외치면서 전도하기도 했다.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을 구원해야 하기에 중생 즉 거듭남에 대해서는 강조했고 또 구원의 확신을 가지도록 교육했고 구원받은 성도는 열심히 예배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도행전은 전도로 복음이 확장되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고 그로 인하여 모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게 되었다. 바울이 빌립보 간수의 집 사람들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복음을 전했고 그 가족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교회가 생기고 사람들이 모여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데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기에 그 다음에 따르는 신앙생활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들의 신앙생활의 필요한 부분들을 강조하며 교육했다.
종교개혁자의 1세대는 마틴 루터라고 할 수 있다. 마틴 루터는 직접 로마 교황청을 상대로 도전하며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로마가톨릭의 구원관은 선을 행해야 되고 고행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루터도 구원에 이르기 위해 로마대성당 앞에 있는 돌바닥을 기어보기도 하고 돌계단을 기어올라 무릎과 팔꿈치에 피가 흐르는 고행을 해도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없었다. 그러다가 당시에 금서였던 성경을 보니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씀을 통해 로마 가톨릭의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루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로마가톨릭에 대항하는 종교개혁자로서 교리의 잘못을 강조하기 위해서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야고보서를 향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는 서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구분해서도 안 된다. 실과 바늘처럼 늘 함께 붙어 다녀야 하고 서로 분리하면 온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수요일에 조 목사님은 구원의 서정에 대해서 설교하고 있지만 오늘 구원에 대해서 본문이 언급하고 있기에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구원에는 과거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 그리고 미래적인 요소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도 구원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과거적인 면을 말하는 중생을 구원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오늘 본문 12절은 무언가 아주 잘못된 말씀처럼 인식할 수 있다. 12절 하반 절을 보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한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볼 수 있고 현재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 더 나아가 구원의 완성은 우리가 이 땅을 떠나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감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중생의 구원 받은 성도는 어떤 신앙생활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본문을 통해 살피면서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너희 구원을 이루라.
본문 12절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구원 얻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바울이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빌립보 성도들은 이미 중생한 사람들이다.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기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줄 믿는다.
그렇다면 오늘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하여 효과적인 중생 즉 거듭남의 은혜를 입었으면 동시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 회심과 믿음이다. 회심은 회개를 말하는데 회개가운데 불신의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회심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둑질이나 강도나 살인 죄 같은 것으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죄로 지옥에 가는데 이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면 지옥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에 따라서 회심이 한 번이다 아니면 여러 번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한 번 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던 죄에서 진정으로 돌이키는 것은 우리 생애에 한 번으로 족하다. 그리고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믿음인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 못하던 심령에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순간 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거하게 된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태에서 출생하게 되면 그 순간 생명을 얻었다고 말하며 동시에 어린아이는 자기 엄마를 분명히 인식한다. 학자들에 따라서 어린아이가 어떻게 엄마를 아는가에 대해서 여러 견해를 달리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린아이가 자기 엄마를 확실하게 알고 믿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출생에 있어서도 거듭난 인생은 불신의 죄를 회개하는 회심을 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그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거듭난 성도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믿음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어머니의 태에서 출생한 생명체는 모든 면에 있어서 연약한 갓난아이다. 그러나 미숙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간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새롭게 거듭난 존재는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가야 되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이 자라간다고 말한다.
엡 4: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까지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원한다고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갓난아이가 출생했으면 그 시기에 합당한 성장과 성숙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부모나 다른 사람에게 안타까운 일이다. 본문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믿음의 성장은 육신의 눈으로 인식하거나 알 수 없다. 그러면 우리 믿음이 자라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반응이 바로 우리의 신앙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예를 들면 미세먼지로 인하여 공기 질이 안 좋으면 시야가 뿌옇고 목이 아프거나 눈이 가려울 수 있다. 그러면 공기 질이 안 좋은 줄 알고 마스크를 쓰거나 외출을 삼가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신앙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의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이 성숙한 신앙의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점점 성장하고 성숙해 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그것은 키가 얼마나 컸고 몸무게가 얼마나 늘었는가. 내지는 몸의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가지고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적 상태도 믿음이 자라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을지라도 그의 하는 행위를 통해서 믿음이 성장했다고 인정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직분이 더해지거나 신앙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신앙의 모습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의 행위는 억지로 그런척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외식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반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믿음의 합당한 열매로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란다.
2. 구원을 이루어 감에 있어서 방해요소가 있다.
본문 14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은 하나님의 속성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사탄의 속성이다. 우리가 사탄의 종이었다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 속에는 자꾸 옛 습성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본능이 작용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주어지는 일에 있어서 합당한 구실을 삼아 원망을 일삼고 있다. 원망하는 것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원망하는 것이 상황에 따라서 용납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성경에서 원망은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 어떤 어려운 상황에 놓여도 원망과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평탄하고 문제가 없었던 때는 없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가는 그 길은 여러 가지 극심한 어려움과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의 손에서 벗어난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진퇴양난의 위기를 만나게 된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홍해 바다가 놓여있고 뒤쪽으로는 바로의 군대가 자기들을 잡으려고 쫓아오고 있었다. 그 상황은 앞으로 나간다고 해도 바다에 다 빠져 죽을 것이고 뒤쫓아 오는 바로의 군대에 의해서 붙잡혀 애굽으로 돌아간다 해도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어 견디기 힘든 상황 마치 죽을 지경이다. 도망갈 수 있는 다른 길이 보이지 않게 되자 백성들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고 단순히 탄식하는 원망의 소리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하고 모세에 대해서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쏟아 냈을 것이다. 우리도 그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해도 성경은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 범죄행위라고 책망하고 있다. 상황에 관계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어렵고 힘들어 죽겠다는 것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상황만을 바라볼 때 나오는 탄식 소리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형편과 환경을 모르거나 방관하고 계시지 않고 다 아시는 하나님께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상황에 관계없이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즐겁고 평안할 때는 찬송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는 줄 믿는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내게 복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반응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선한 행위로 드러내며 증거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믿음 없는 모습의 원망이나 시비가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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