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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15)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2025-06-21 08:58:45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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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15)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벧후 3:8-13

250615주일낮설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숲속 오솔길을 걸어가던 중 두 갈래의 길이 나왔다. 그러자 할머니는 하나님의 뜻대로 가야 되겠다는 생각에 기도를 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지팡이를 중앙에 놓고 쓰러뜨렸을 때 지팡이가 어느 방향으로 쓰러지던 그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기도를 마친 뒤에 할머니가 지팡이를 쓰러뜨렸다. 그러자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그러나 할머니의 속 마음은 왼쪽 길로 가고 싶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다. 하지만 역시 지팡이는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쓰러뜨렸고 여러 번을 시행 한 뒤에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지자 역시 하나님이 왼쪽 길로 인도해 주시는구나 하면서 왼쪽 길로 갔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순종하며 나아가겠다고 기도하지만 내가 생각한 뜻과 같지 않으면 계속해서 기도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억지로 맞추지는 않는가?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일을 해야 되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를 가지고 먼저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 뒤에 그제서야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미 모든 것을 자기가 결정해 놓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으로 합리화 시키려고 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떤 설득이나 권면도 통하지 않는다.

올바른 기도는 자기가 계획을 세워 놓고 하나님께 결제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한다.

사람들은 신앙에 있어서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원하며 하나님께서도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깨닫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무엇인가를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통하여 한 가지를 말씀하기 보다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시며 깨닫고 실천하기를 원하신다.

살전 5:16-18절 말씀처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는 그 하나님의 뜻이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겨 있는 것처럼 보여서 그것을 읽으며 깨달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교독한 본문의 말씀에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베드로가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본문을 통하여 당시의 성도들이나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주님의 재림은 분명한 사실이다.

 

본문 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다. 그런데 가까이 왔다고 하시면서 이천년이 지나도록 아무 변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본문 8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시간의 개념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하나님에게는 천년이 하루 같을 수 있으며 하루가 천년 같을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인간의 시간 개념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신비다. 시간을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크로노스(Kronos)로 물리적이고 양적인 시간이다. 반면에 카이로스(Kairos)로 결정적인 순간이며 질적인 시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시간은 크로노스이다. 그런데 재림은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계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그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포착하며 만들어가는 특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인간의 시간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달려 있음을 올바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주의 재림은 우리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대에 이루어질 사건이다. 그런데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세상 끝 날은 하나님께서 택한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으로 인도되는 때라는 것이다.

9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라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택정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날은 언제 인지 몰라 답답한 가운데 있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임한다. 10절에서는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온다고 묘사하고 있다. 사람은 언제 예수님의 재림이 일어나는지 알기를 원한다. 그래서 많은 이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와 때를 예고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그 시간에 예수님의 재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매우 어리석고 교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은 하나님의 비밀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둑이 도적질하기 위하여 밤에 몰래 오는 것 같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날 것을 말씀한다.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주님의 재림때에 악한 세상과 죄인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말씀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언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날짜를 모르기에 답답한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도둑과 같이 홀연히 임하지만 누구든지 나태하지 말고 경각심을 가지고 옷을 지킨다는 것은 믿음을 지켜 주님의 심판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마지막 주님의 심판대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2.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로 준비해야 한다.

 

본문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말세를 살아가면서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신앙 자세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이라고 말씀한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거룩과 경건의 요소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리 모든 행실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므로 저 사람이 에수 믿는 사람이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저 사람이 교회 다니는 신자야 난 몰랐어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보면 모인 사람중에 목회자들이나 교회 직분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기독교인의 수가 줄었다고 해도 모인 사람중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고 그 가운데서도 집사 권사의 직분 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는 말이나 행동이 안 믿는 사람 같아서 한국의 아줌마는 강하고 용감하다고 생각하며 지나치게 된다. 그런데 조금 가다보니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집사 권사라는 말이 대화 가운데서 나오는 것을 들으면서 얼굴이 살짝 달아오를 때가 있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믿음의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기는 무심코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다고 해도 우리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성도들은 세상 사람과는 무엇인가 좀 더 다른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란다.

경건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삶의 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우리 성도들은 참된 경건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는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도 칭찬과 인정받는 삶이 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잘했다는 칭찬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참된 경건의 모습은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자세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일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베풀었을 때에 나에게도 어떠한 대가가 주어지겠지 하는 생각에 받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베푸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내가 두세 가지를 베풀면 상대에게서 적어도 하나는 돌아오겠지 하는 바람에서 선을 베풀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무엇인가 내 이름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베푼다. 무엇인가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나 적어도 자기가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때에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

그러므로 도움을 받아도 그것에 대해서 감사의 표현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이웃에게 은밀하게 선을 베풀라고 말씀한다. 이러한 선한 행실은 자기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늘 자기를 살펴 세상에 물들거나 오염되지 않는 믿음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딤전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자연스럽게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들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연단 즉 훈련해야 한다. 운동선수만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경건을 이루어 가기 위해 부단히 힘쓰고 애써야 한다. 신앙의 시간만 흘러간다고 자연히 경건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경건을 위하여 예배생활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고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랑과 친절의 마음을 담아 다른 성도들과 교제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주변에 연약한 사람이 없는가를 살피며 그들에게 사랑의 선을 베풀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말과 행동에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다가 마지막 날 주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 듣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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