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세상에서 성도가 사는 법(11)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사람들
벧후 2:10-16절
250427주일낮설교
베드로후서를 살피는 가운데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을 지내면서 다른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했다. 다시 베드로후서로 돌아와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고자 한다. 그러나 두주 전에 우리가 살펴본 내용에 대해서 다시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드로사도가 활동하며 흩어져있던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에는 이스라엘이 정치적이나 신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에 주권을 빼앗겨 속국으로 막대한 세금을 로마정부에 바쳐야 하는 상황에 일반 백성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신앙적으로 심한 고난과 핍박의 삶을 살았다. 로마는 자기 나라의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라고 강요하고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이외에는 섬기거나 그 앞에 절할 수 없다는 신앙 때문에 온각 박해를 견뎌야 했다.
그리고 교회에는 이단 사상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이단은 아니더라도 거짓 지도자들이 일반 성도들의 신앙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대다수의 성도들은 말씀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잘못된 모습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이 있었다. 죄악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성도들은 왜 하나님께서 저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시는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은 참으시는 것이고 그것은 믿음의 성도들이 피해를 입을까 하는 마음에 추수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결코 어그러짐 없이 하나님의 때에 분명하게 이루어진다.
지난번에 살펴본 베드로후서 2:4-9절 말씀에서는 노아 홍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 땅에 임한 유황불 심판을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에는 죄인은 가차 없이 몰사당할 수밖에 없지만 의인은 심판 가운데서도 건짐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더딘 것 같고 잠잠한 것 같아도 하나님의 때에 임한다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하는 자세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는 당시 교회 내에 있었던 죄의 유형에 대해서 말씀한다. 당시 있었던 죄악된 모습은 무지하고 교만하여 아무 거리낌 없이 함부로 훼방을 일삼고 있었으며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쾌락을 즐기며 음란하고 탐욕스러우며 불의의 삯을 사랑하는 거짓 선지자 발람의 뒤를 따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당시 초 신자라기보다는 지도자급에 있었던 사람들이었기에 이로 인해 교회는 많은 혼란을 빚고 있었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와 같이 찾아와서 우리를 미혹하므로 늘 깨어있지 않으면 죄 가운데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기꾼은 사기꾼처럼 생기지 않고 도둑놈은 도둑놈처럼 생기지 않았다. 죄를 짓는 사람은 얼굴도 다 험악하여 무서운 얼굴표정을 짓고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죄를 짓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런 생각은 매스컴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범죄 행각에 대해서 T.V.같은 매체를 통해서 얻어진 정보를 가지고 있다. 범죄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선하게 생긴 사람을 배역으로 쓰고 악인은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사람에게 주로 배역을 맡긴다. 아니면 악인은 분장을 통해서라도 악하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성경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어느 할머니가 손자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손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루는 손자가 산에 가서 아름다운 버섯들을 따 가지고 왔을 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얘야 우리 가정은 아름다움 때문에 망했다. 너희 할아버지는 아름다운 여자를 따라 집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는 아름다운 산을 좋아 하다가 산에서 죽었다. 그런데 너는 아름다운 버섯들만 따왔구나. 아름다운 버섯일수록 독이 많은 버섯이고 먹으면 죽는 단다.” 라고 말했다.
우리는 얼굴 가꾸기에만 힘쓰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모습이 하나님의 자녀답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넘쳐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죄악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살피며 우리의 반면교사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이성 없는 짐승 같은 모습이다.
지난번에 살펴본 말씀 중 8절 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인 물심판과 불 심판에 대해서 언급하며 9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 대해서 불의한자라고 칭하고 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는 불의한 자를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사람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10절에서는 그들의 모습을 하반부에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영역까지도 함부로 넘나들며 자기가 마치 주권자인양 행세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더 나아가 마음중심에 자아가 철옹성처럼 굳게 버티고 있어서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위치에서의 역할들만 감당하면 된다. 그러나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자기 아니면 교회가 안 되는 것처럼 강하게 자기주장을 펴는 것을 말한다. 결국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힘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에 대해서 참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영광 받는 존재가 되기를 힘쓰기 보다는 나는 낮아지고 나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아도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기를 힘써야 한다.
13절에서는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놀러 다니거나 즐거운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성경에서 낮과 밤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낮이라는 시간은 일하며 활동하는 시간을 말하고 밤은 쉬는 때를 말한다. 물론 육신적인 삶에 있어서도 해당되는 말이지만 영적인 면에서의 삶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 낮이라는 시간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믿음으로 살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다. 낮이라는 시간은 말씀 충만 또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부단히 힘쓰고 애써야 하는 시간을 말한다.
밤은 해가 서산을 넘었기에 밤이 아니고 말씀이 없고 기도가 없으면 밤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보기는 멀쩡해서 낮같은데 밤인 사람들이 있다. 믿음의 사람이 영으로 살지 않고 육으로만 살고 있는 것이 바로 밤이다. 때가 밤이 아니라 그 인생이 밤이라는 말이다.
14절에서는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헬라에는 후안무치한 남자는 그 눈에 눈동자가 아닌 매춘부를 가지고 있다는 경구가 있었다고 한다. 음탕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지는 않았어도 당시 사회에서 있었던 잘못된 모습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는 정결하지만 세상은 죄악으로 얼룩져 있다. 간음죄까지 폐지된 가운데 온갖 성적 타락이 행해지고 있기에 이러한 죄악이 혹시나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14절 하반 절에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습의 샘플로 발람을 예로 들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생활하던 당시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할 자를 물색하다가 발람 선지자를 대상으로 물색한다. 사람을 보내어 발람을 부르지만 하나님께서 발람의 길을 막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발락의 약속에 눈이 어두워진다.
민 22:17절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물론 그곳에 가서 행한 것은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하게 되지만 그곳을 가게 된 동기가 발락이 제시한 상당한 보상이었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불의한 삯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6절에서 거짓 선지자 발람을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말 못하는 짐승 나귀를 통해서 불법에 대하여 책망 받을 정도로 타락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경에서는 말 못하는 짐승이 인간에게 말한 경우가 두 번 있는 데 한번은 에덴동산에서 뱀의 경우와 민 22:27-30절에 나오는 발람을 태우고 발락에게로 가던 나귀의 경우이다. 탐욕에 빠지면 미물인 짐승에게 까지 수모를 당하는 비참함이 주어질 수 있다. 성경을 통해서 탐욕에 대해서 강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이러한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우리의 발걸음을 보면서 평가하기도 하고 따라오기도 한다. 사람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는 발걸음이 될지언정 악한 길로 이끄는 발자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번 지나온 발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뚜렷하게 남아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 한마디나 행동거지 하나 하 나에 신중을 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기분이나 나의 감정에 따르지 말고 이러한 것이 교회에 얼마나 유익하며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늘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불의한 자 즉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사람들의 삶의 특징을 잠시 살펴보았는데 그 반대되는 경건한자의 삶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경건한 자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한다.
벧후 2:9절에서 주께서 경건한자는 시험에서 건져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눈은 세상에서 경건한자를 찾으시고 그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줄 믿기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경건한자가 되기를 힘써야 하는데 경건한자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기쁨이라는 말의 영어 단어는 JOY다. 이 영어 단어를 이렇게 생각해 보자 J는 JESUS이 약자로 보고 O는 Others 의 약자로 보고 Y는 Youself의 약자로 보면 이렇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제일먼저 예수님에게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을 행할 때 예수님 중심이고 예수님이시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까 를 물으며 나가는 것을 말한다. 입술로만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생각하며 예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기를 힘쓰는 것을 말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한 종류는 자기중심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또 한 종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에 약하다고 할 때에 우리는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두 번째의 우선순위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 자신이다. 우리는 이것을 바꾸어 자기 본위의 삶을 살기 위하여 발버둥치고 있다. 이것은 성경적인 삶의 자세는 아니다. 우리의 삶의 자세를 바꾸어 내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 그리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나는 맨 나중에 둘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진정한 기쁨의 삶을 살게 되는 줄 믿는다.
이러한 사람을 성경에서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며 본문 9절에서 말하는 경건한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을 살아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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