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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8) 성숙한 기도의 향연
2026-03-14 08:58:55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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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8)

성숙한 기도의 향연

살전 3:9-13

260308주일낮설교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소로 말씀과 기도를 말하고 있다. 성도의 삶에 있어서 말씀과 기도는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수레의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야 한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기도를 강조하고 있다.

아프리카 서쪽의 한 작은 마을에 크리스천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예배당이나 기도실이 없는 마을에 살던 그들은 자연스레 자신들의 집인 오두막 뒤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 했다. 그 결과 모든 오두막집 뒤에는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생겼고 그 길은 기도를 위한 발걸음으로 생긴 거룩한 흔적이 되었다. 그런데 열대 지방은 식물의 성장이 빨라 그 길을 잠시만 사용하지 않아도 금세 잡초가 무성해지곤 했다. 그래서 이웃 크리스천은 숲으로 가는 길에 잡초가 무성한 집을 볼 때면 형제의 집 길에 잡초가 많이 생겼군요라고 근심스럽게 말하였다. 그 길이 곧 신앙의 상태를 보여주는 척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호흡이다. 호흡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런 상태를 방치하면 합병증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기도를 게을리하면 신앙의 한 모퉁이부터 무너지게 된다. 마치 기도하러 들어가는 길에 잡초가 무성하듯 우리 신앙의 길에 마귀가 뿌린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어떤 종교이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대상에게 기도 한다. 기도가 우리 기독교인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우리의 기도는 다른 사람들의 기도와 달라야 한다. 대부분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나 가족의 안위나 복락만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저 세상에서 잘 살고 즐거운 삶이 그들의 최대의 목적이 되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면서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지극한 정성을 드린다.

물론 우리의 기도도 자신과 가족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런 기도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이렇게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여기에만 머문다면 아직 초보적인 기도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연수가 더해감에 따라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기도도 바뀌어야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숙한 기도는 어떤 기도가 되어야 하는가를 살펴보며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기쁨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한다.

 

본문 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걱정되어서 자기 대신 디모데를 보냈고 그가 돌아와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상황을 보고 했을 때 그것을 들으면서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본문에서도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기 삶이 풍부하고 만족하며 별문제가 없으면 마음이 조금 여유로울 수 있다. 그때 들리는 다른 사람의 좋은 소식에 별 마음이 쓰이지 않으며 좋겠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지나칠 수 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어서 여러 자식들이 있을 때 어떤 자식은 잘 나가는데 어떤 자식은 아주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힘들어하는 자식에게 가서 잘되고 있는 자식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형제간에도 자기 코가 석 자인데 다른 사람의 잘되는 상황에 박수를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사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부모는 지금 힘겹게 살아가도 자식들이 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좋아하며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자녀들이 자기에게 무엇을 얼마나 줄까 하는 기대감이 아니라 자녀들이 잘되고 있다는 소식 자체가 부모에게 기쁨을 안겨 준다. 그것은 자녀들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다.

사도 바울 역시 마찬가지로 영적 부모의 마음으로 자기는 많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생활의 모습으로 기뻐하고 있다.

살전 3:7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바울은 지금 경제적인 면에서나 기타 여러 가지 역경을 당하고 있지만 거기에 개의치 않고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모범적인 신앙 소식으로 인하여 큰 기쁨을 얻고 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기뻐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우리 가운데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함께 웃고 떠들어도 그 자리가 끝나고 나면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에 사랑을 더해 달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 번역 성경 12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의 기쁨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지만 그러한 소식을 들으면서 진정 바울은 성도들 때문이 아니고 그들에게 믿음으로 주셔서 신앙생활을 잘하게 하신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리고 있다.

본문에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또 마지막 부분에 어떤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쁨의 근원이라고 고백하면서 기뻐하는 순간에 보면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주신 그 결과들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좋은 장난감이던지 맛있는 과자를 주면 그 물건에 정신이 집중되어 그 물건을 준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연약한 모습이 마치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육신의 만족을 주는 세상 적인 것들로 만족하거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기쁨과 감사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2. 우리의 기도는 집중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

 

본문 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안녕과 믿음에서 무너지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했는데 건성으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집중적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본문에서는 주야 즉 밤낮으로 계속해서 기도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기도도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간구해야 한다. 한두번 하거나 몇 번 하는 것 같은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해야 되는가 하면 40일이나 백 일 동안이라는 말은 인위적인 기도의 작정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한 시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대가 언제인지 모르기에 그 기도가 응답 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생활에는 인내가 요구된다. 인내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는데 이런 기도의 모범을 야곱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씨름했다는 말은 씨름하듯이 매달리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모습을 말한다.

야곱은 그 밤에 얼마나 처절하고 필사적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 그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날 정도였다.

그러나 꼭 우리의 기도가 이렇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기도일 때 응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너무 낙담하여 기력을 찾지 못하여 쓰러져 입술로 읊조리는 신음 소리 까지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기도 자세는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응답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줄 믿기 바란다.

 

3. 재림을 소망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현재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기도해야 한다.

 

본문 13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예수의 재림시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그들의 거룩함에 조금도 흠이 없기를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이다. 본문에서 유의해야 하는 상황은 종말에 대한 소망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사실보다는 현재 신앙생활하고 있는 성도들의 거룩함에 더 역점을 두고 있다. 올바른 성경적 종말론이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어떤 예측보다는 현재의 삶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말씀한다.

 

흔히 종말론이라고 하면 말세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내지는 임박한 종말의 때가 언제 인지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거나 기근과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과 같은 징조에 대한 예측만 난무한다. 종말론에 대한 이러한 자세는 신비주의나 맹목적인 광신에 빠지거나 아니면 시한부 종말론에 빠지기 쉽다. 그 결과 현재의 삶은 완전히 등한시한 채로 오직 망상에만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

예전에 다미 선교회가 시한부 종말론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느 날 주님이 재림하시니까 그때 들림 받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심지어 학생들은 학교 가는 것도 포기하고 오실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고 소동을 벌이다 무이 로 끝났다.

그러나 우리가 종말론적 신앙을 갖는 것은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확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때 주님으로부터 잘했다 칭찬 듣기 위해서 현재 우리가 행하고 있는 선한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행해야 할 선한 일은 먼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주님이 오시기 전 세상에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방주로 다 들어올 수 있도록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오늘의 세상은 마치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전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세상에 취해 있어 전하는 복음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선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 이 일에 전력 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한 신앙의 모습을 이루어 다른 사람과의 만남과 교제 가운데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란다. 꽃의 향기가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듯이 우리가 풍기는 예수님의 향기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의와 진리 가운데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 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은 미래의 환상이나 종말의 시기만을 헤아리며 현재의 삶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성숙한 기도를 드리는 성도의 모습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기쁨에 감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신하는 믿음 가운데 힘써 간구하며 미래를 소망하여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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