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기쁨의 플랫폼(1)
시작하면서
빌 1:1-2절
250629주일낮설교
앞으로 주일 낮 설교는 빌립보서를 가지고 설교하고자 한다. 빌립보서를 가지고 설교하는 동안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인사했으면 좋겠다. 주님의 기쁨이 당신에게 라는 말과 함께 좌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당신 에게라는 말에 옆에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이면 집사님, 권사님 잘 모르거나 자기 배우자 일 경우에는 당신 에게라고 표현하면 되겠다. 왜 이런 인사로 시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의례적으로 먼저 설교를 인사로 시작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같은 표현을 쓰다 보니까 매주 바꿔서 인사를 하게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너무 인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하는 인사는 단순히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평강이 옆 사람에게 임하므로 우리의 삶이 기쁨의 삶이 되기를 소원하며 축복하는 마음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빌립보서의 주제를 든다고 했을 때 기쁨이라고 할 수 있고 짧은 4장의 말씀 가운데 기뻐하라는 말이 십여 군데나 나오고 있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없고 또한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지만 빌립보서를 강해해 나가는 가운데 우리의 삶에 기쁨을 회복하는 은혜가 넘쳐 날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시면서 요 14:27절에 보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하신다.
빌립보서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늘 기쁨이 떠나지 않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빌립보서를 시작하면서 먼저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배경과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고 있는데 나타나고 있는 서론적인 내용을 살피며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1.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배경
빌립보라는 도시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은 알렉산더가 그의 아버지 빌립2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도시 이름을 빌립보라고 붙였다. 빌립 2세가 그리스 반도 위에 있던 마게도냐의 왕이 되어 통치하다가 죽고 그의 아들이었던 알렉산더가 20세에 마게도냐의 왕이 되어 마게도냐를 통일한다. 그리고 마게도냐를 넘어 페르시아 즉 바사라는 나라와 전쟁을 해서 결국 승리하여 바사의 수중에 있던 모든 땅을 다 차지하고 헬라 제국을 이루지만 결국 로마에 침략 당하며 역사의 시대는 신구약 중간기를 지나 신약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행 16장에 보면 빌립보에서 사도 바울의 전도가 시작되었다. 바울은 처음부터 마게도냐 지역을 품고 선교계획을 세운 게 아니었다. 바울은 3차에 걸쳐서 선교사역을 시행했는데 첫 번째 갔던 지역이 지금의 투르키예 땅인 소아시아 지방이었다. 1차 선교사역을 마치고 안디옥 교회에 와서 선교 보고를 하고 다시 재정비해서 선교를 나갈 계획을 세웠다. 바울의 마음에는 자꾸 첫 번 째로 선교했던 지역이 눈에 밟혔다.
지나고 보니 미진했던 것들이 생각 났고 이렇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스러움이 밀려 왔다. 그래서 다녀갔던 1차 사역 지역을 다시 가서 잘해 보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길이 막혔다.
그러던 가운데 밤에 환상을 보게 된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이 자기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바울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2차 선교 계획을 마게도냐로 정하여 나간다.
그리고 마게도냐 지방의 처음 지역인 빌립보로 들어가서 옷감 장수 루디아를 만나 전도하고 또 귀신이 들어 점치는 여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주었다.
귀신이 나가고 나자 신통력을 잃어버려 점을 제대로 치지 못하게 되었고 그 여인으로 돈벌이 하던 주인이 바울 일행을 고소해서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며 기도하자 진동으로 인하여 옥문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자 졸고 있던 간수가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책임 추궁이 돌아올 것을 염려하여 자결하려고 하자 이를 말린다. 간수는 바울을 자기 집에 데리고 갔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결국 그 집에 구원이 임하게 된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도시를 떠나 데살로니가 지방으로 가게 된다. 바울의 일행은 빌립보를 떠나게 되지만 바울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
빌립보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에 마게도냐 지방에 가서 세운 유럽 최초의 교회다. 그리고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지속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물질로 선교 사역을 후원하며 바울의 선교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는 바울이 감옥에 투옥된 상태였는데 이때에도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옥에 갇힌 바울을 돕게 하고 물질적으로도 후원하는 등 바울에게 깊은 애정과 호의를 나타냈다.
그런데 바울을 돕던 에바브로디도가 중병에 걸려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 일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큰 근심이 되었지만 다행히 하나님의 은혜로 에바브로디도가 회복되었다.
그 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교회로 돌려보내면서 빌립보교회가 자신에게 베푼 사랑에 대하여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면서 빌립보교회에 도움이 될 말씀들을 기록했는데 이것이 빌립보서이다.
2.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 - 종과 성도
본문 1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바울이 보낸 편지들 즉 바울 서신이라고 불리는 13권의 책은 로마서에서부터 빌레몬서까지다. 그의 서신 서에서 자신을 ‘종’으로 소개한 것은 빌립보서와 로마서와 그리고 디도서뿐이다. 다른 책에서는 자신의 사도된 것을 밝히면서 자신을 소개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냥 바울이라는 이름으로만 시작하고 있는 데살로니가서와 빌레몬서도 있다.
빌립보서에서는 바울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종은 노예를 말한다. 종은 주인의 집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종이었다. 다시 말하면 신분적으로 천한 사람이었고 자유나 자기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생활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교회에 잘못 전달되어서 목사를 가리켜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신분적으로 상당히 높여서 평신도와는 구별된 존재로 생각하기도 했다. 종이라는 표현이 목사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스스로 주의 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에게 예속되어 모든 삶에 있어서 내 마음대로 하거나 내 임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줄 믿는다.
예수님의 종이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뜻대로 행할 수 없다. 주인의 뜻대로 행하고 주인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 순간부터라도 우리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늘 기준을 예수님으로 삼고 예수님이라면 이런 순간에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실까 내지는 주님이라면 이런 순간에 어떻게 행하실까 를 늘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매사에 내 뜻이나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힘쓰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바울은 편지의 수신자인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모든 성도라고 칭하고 있다.
성도라는 말은 거룩한 무리로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한다. 이것은 지난주에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내가 성도되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불의한 세상에 속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게 살고자 힘써야 한다. 예수님은 흠없고 점 없는 즉 흠과 티가 없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도 흠 없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결단을 촉구하신다.
벧전 1:15절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이토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처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벧전 2:12절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생각하여 그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힘쓸 때 우리의 모습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께 사랑받게 된다. 그러나 내가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한 바른 인식이 없이 주어지는 하루 하 루의 삶에 매여 살다보면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는다. 돼지를 도살장으로 끌고 갈 때에는 돼지 앞에다 콩을 떨어뜨리면 돼지는 눈앞에 있는 콩만 바라보며 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의 삶도 눈앞의 콩만 바라보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랑거리로 위를 쳐다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축복의 인사 - 은혜와 평강을 기원
2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은혜는 지난주에 언급했듯이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가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은혜를 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평강은 평안과 같은 표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맺혀지는 삶의 열매로 참된 평안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때만 누릴 수 있게 된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과 처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환경과 처지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의 삶에서 나타나게 된다.
특히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사라지고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는 근본적인 요인은 죄의 결과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그로 인해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죽음의 공포가 찾아오고 어찌할 수 없는 걱정과 근심에 빠져들게 된다. 죽음의 공포가 아니라도 우리 앞에 있는 크고 작은일들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불안과 염려가 밀려오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참 평안이 있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사탄의 미혹과 공격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 결과로 참된 평안을 얻게 되는 줄 믿기 바란다.
평안은 한 가지 부분에서만 문제가 없을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전반에서 문제나 어려움이 없을 때 주어지는 복이다. 평안이라는 히브리말은 샬롬인데 유대인들이 쓰는 샬롬이라는 인사에는 단순히 평안하신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평안의 복 뿐만 이 아니라 형통의 복이나 건강의 복이나 하는 모든 일이 다 잘되는 복 등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형통과 평안을 말한다.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평안과 행복이 예배드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풍성하게 이루어 질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의 복으로 여러분의 삶이 형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이나 자녀들의 삶에 늘 복된 소식만 들릴 수 있기를 바라고 영적으로나 육신적으로 강건함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필요를 따라 채우시되 풍족함으로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
오늘부터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참된 은혜와 평안이 충만하게 임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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