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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21)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2026-08-11 14:25:08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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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21)

진정으로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살후 2:13-17

260809주일낮설교

언젠가 감사라는 인사보다는 고맙다는 인사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서 찾다 보니 국립 국어원의 자료에 호의나 도움을 받았을 때 고맙다와 감사하다는 것을 모두 쓸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고맙다는 것은 남이 베풀어 준 호의나 도움 따위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감사하다는 것은 고맙게 여기다 고마운 마음이 있다는 뜻을 나타낸다. 고맙다는 말은 고유어고 감사하다는 한자어라는 차이가 있는데 내용이나 형식에 아무런 차이가 없으므로 쓰던 대로 사용하면 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쓰느냐 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언어의 표현이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신경정신과 의사가 신경과민증 환자 1000명을 조사했더니 그들 가운데 95%가 남을 비판하고 원망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모였다 하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누구 욕하고 걸고 넘어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신경과민증이 생길 수 있다. 반면에 날마다 감사하면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에 비해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다.

바울은 감사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먼저 보낸 전서나 나중에 보낸 후서 에서 인사하면서 거듭해서 강조하는 말이 바로 감사의 인사였다. 살전 1:2절에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쓰고 있다. 역시 살후 1:3절에서도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본문 13절에서도 역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감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감사를 마땅히 할 것이라고 했고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바울이 본문에서 밝히고 있는 감사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헤아려 보며 감사가 넘치는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1. 우리를 택하셔서 구원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

 

본문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들을 택하셔서 구원 얻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하게 하셨으며 진리를 믿게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먼저 선행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해서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죄로 죽어있던 죄인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으로 택하셔서 구원으로 인도 하셨다.

사람들은 자기가 출생한 날짜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렸을 때는 자기가 태어난 생일에 부모는 당연히 맛있는 음식과 선물을 주는 것으로 인식하여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자녀의 생일에 태어난 자녀를 축하하는 의미를 가져야 하겠지만 정작 더 큰 의미는 자녀를 이 땅에 출생하게 해 준 부모님에 대해서 큰 선물은 못 해도 말로라도 자기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라도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버이날이나 기타 다른 날에 어버이 은혜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가슴이 먹먹해 오는 감정을 느끼며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노래를 부를 때뿐 실제 삶에서는 부모님의 은혜는 온데간데없고 부모님이 자기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인지 따지기에만 급급하다.

이기적인 모습이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가장 큰 조건은 우리를 영원 형벌 받아 지옥에 던져질 존재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 백성 되게 하신 것이다. 택하여 주신 것이나 구원받게 하신 것이나 거룩하게 하신 것이나 진리를 믿게 하신 모든 것이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고 은혜와 사랑 때문이다.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하나님께 가장 크고 귀한 선물을 받았음에도 이것이 귀한 줄도 모르고 그냥 무시하고 그저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집착하여 하나님이 그와 같은 것들을 왜 내게는 주시지 않는가 하는 마음에 서운해 하거나 불평하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예수님께 병 고친 사람들이 장차 어떻게 됐을까?’라는 소설이 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보니까 알코올중독 자가 술이 만취해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시고 너는 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는 본래 절름발이였는데 예수님이 내 다리를 고쳐주셨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절름발이 때는 거지로 살았는데 하도 오랫동안 거지 생활을 하다 보니까 특별하게 할 일이 없어서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술만 마시다 보니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고 했다. 또 가다 보니까 창녀를 발견하고 당신은 왜 창녀가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 안에 있던 귀신을 내쫓아서 맑은 정신을 만들어 주셔서 정상인으로 살아 보려고 애를 써도 사람들이 귀신 들렸던 여자라고 쑥덕거리고 상대해 주지 않아서 시집도 못 가고 외로워서 창녀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길을 가다가 조폭 한 사람을 만났다. 그에게 어떻게 하다가 조폭이 되었느냐고 묻자 저는 본래 시각장애자였는데 주님께서 눈을 뜨게 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래서 너무 좋아 마음껏 다녔는데 눈이 감겨 있을 때는 몰랐는데 눈을 뜨고 나니 세상에 못 볼 것들 즉 불의한 일이나 모순된 일 또한 부조리한 일들을 보다 보니 울화통이 터져서 참지 못하고 치고받고 싸우다 보니 조폭이 되었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질병 때문에 불행하고 귀신 때문에 불행하고 온갖 문제 때문에 불행한 것이 불쌍해서 기적을 행하여 고쳐주셨다. 그렇지만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고 속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은 내가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것을 믿으시고 이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 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돌리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이 격려하시고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본문 16-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7절의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힘을 주셔서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우리를 격려하시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16절에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우리 하나님은 소망과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고후 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하나님은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기 바란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모든 것이 매우 빠른 세상이다. 애경사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 전에는 우편으로 알릴 수밖에 없었고 위로나 축하를 직접 찾아가서 해야만 하고 아니면 인편으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SNS를 통해서 순식간에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또한 축하와 위로의 메시지가 바로 답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빠른 것은 좋지만 진정으로 상대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 함께 공유하고 동참하는 마음은 점점 희박해진다. 그리고 인간의 위로는 점점 형식화되고 일시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람의 위로와 격려는 형식적이고 일시적이어서 기댈 수 없지만 하나님의 품은 우리의 연약하고 아픈 모든 것들을 다 담고도 남는 넓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줄 믿기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보고 의지해야 할 대상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보는 성도가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택한 자녀들이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살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예수 믿고 거룩해져 가는 것은 우리의 의지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하심이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 없고 정화할 수 없다.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에게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더 악하게 대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온갖 욕설을 퍼부어야 속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본성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를 것을 말씀한다.

살전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우리가 이것을 실천하기에는 쉽지않다. 우리 마음에 있는 감정이 먼저 작용해서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생각하고 자기에게 행한 대로 갚으려고 한다. 한 대를 맞으면 두 대를 때려야 직성이 풀리고 욕을 먹으면 그대로 참는 것이 아니라 몇 배 이상으로 갚아 주어야 화가 풀린다.

그런데 성경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더 니아가 선을 행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본성을 따라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을 이루어가시기를 원하신다.

왕하 6:22-23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들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하는지라 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그들이 그들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자신을 치러 온 아람 군대에게 엘리사는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자 내가 너희가 찾는 사람에게로 데려갈 것이라고 하면서 아람 군대를 사마리아 가운데로 인도한다. 그곳은 이미 연락을 받은 이스라엘 왕이 군대를 끌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람 군대가 눈을 떠보니 분명 조금 전에는 자신들이 엘리사를 포위했었는데 이제는 이스라엘 군에게 포위를 당했다. 이때 이스라엘 왕이 내가 치리이까.”하고 묻자 엘리사는 그들을 치지 말고 대접하여 돌려보내라고 한다. 지금 아람은 강한 나라이고 이스라엘은 약한 나라인지라 자비를 베풀 여유가 없음에도 엘리사는 그들에게 선을 베풀었다. 결국은 이로부터 아람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쳐 들어오지 않았다.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이다.

 

감사를 강조하다 보면 우리의 입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계속 반복될 수 있을지라도 진정으로 감사하는 모습은 상실될 수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을 늘 기억하며 감사하고 우리에게 하늘 나라의 영원한 소망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붙들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믿음의 사람은 진정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 보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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