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받고 싶은 교회(7)
사랑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것
살전 3:1-8절
260301주일낮설교
오래전에 사용된 것으로 들어 본 적이 있을 수 있다. 미국 어느 한인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미국에서 타향살이 하고 있는 이민자들이 다 그렇듯이 개개인들이 나름대로 모두 향수병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비디오 가게에서 한국 드라마를 녹화했다가 대여해 주는 것을 보면서 향수를 달래는 것이었다. 당시 모 교회 장로님이 토요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비디오 가게에 들러서 사극 ‘한명회’를 빌려 왔다고 한다. 주일 오전 예배 기도 순서였기에 한 편만 보고 자려고 했는데 드라마 속성이 그렇듯이 다음 시간에 할 것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들게 하고 끝내기 때문에 다음 것 하나만 더 보자 하다가 그만 밤을 새워 전체를 다 보았다. 다음날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리는데 눈을 감거나 떠도 오직 ‘한명회’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기도 시간이 되어 강단에 올라갔는데 성령의 감동은커녕 머리는 하얗고 마음은 깜깜한 것이다. 그래서 내뱉은 첫 말이 “주여, 성은이 망극 하옵나이다.” 였다. 그 다음에 또 내뱉은 말이 “주여, 통촉하여 주옵소서.” 였다. 얼마나 부끄러움과 창피를 당했는지 그날 밤에 집에 돌아와 골방에서 혼자 울면서 회개 기도 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기도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은연중에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토요일은 주일 준비 하는 날로 지낼 때 주일 예배 시간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결혼 초기에 제 집사람이 하루는 자기에게 달라진 것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아무리 봐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없다고 하자 머리카락을 자르고 왔는데 모르겠냐며 발끈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 관심이 없다고 투덜댔다. 대부분의 남자 들은 상대의 변화에 달라진 것을 별로 잘 못 느낀다. 그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무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의 변화에 무딘 사람도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든지 아니면 좋아하는 물건들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가진다. 그것은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다. 사람은 관점이나 관심사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관심이 있는 것에 집착하기도 하고 마음을 쓰게 된다. 그리고 관심갖는 것에는 자연히 그것에 마음이 가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관심을 가지면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에 건성으로 왔다 갔다 하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면 떨어져 있는 휴지도 보이고 정열이 안된 의자도 보이고 정리 안된 주변 물건들이 보여서 그것을 정돈하게 된다.
본문에서는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들 간에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성도들 간에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목회자와 성도 간에도 너는 너 나는 나 가 아니라 한 공동체에서 맡겨진 역할이 다른 지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나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며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 가운데서 나타나는 아름다운 관계를 통하여 우리의 삶에 지표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성도는 목회자의 지도를 따라 믿음이 세워진다.
본문 2절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열정이 있었다. 데살로니가 지역에 들어가 전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핍박으로 어쩔 수 없이 바울은 그곳을 피하여 나왔다. 그렇지만 마음에 늘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고 다시 방문하여 재회하기를 원했다.
살전 2:18절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 어떻게 사탄이 길을 막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상황이 바울에게 있어서 데살로니가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늘 마음에 걸리고 눈에 밟혔다. 자기는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갈 수 없어 아덴에 남아 있고 대신 디모데를 보내게 된다. 디모데를 보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고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3주 정도의 전도와 양육을 받았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으며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했다. 그러나 막상 세상에 놓이게 되자 쉽지 않았다. 그때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온갖 말로 유혹한다. 그들의 신앙의 연조가 사탄의 미혹을 당당하게 물리치고 굳세게 믿음을 지켜나가기에는 부족하게 보였다. 영적으로 잘 자라는 것 같았는데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신앙에서 주저앉게 되면 바울이 공들인 그 모든 노력 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마치 목자 잃은 양 떼들이 이리저리 방황할 수밖에 없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 된다. 그래서 연약함 가운데 처한 성도들을 위로하고 붙잡아 주어야 할 대상이 필요했고 바울은 자기가 갈 형편이 안 되자 대신해서 다른 목회자였던 디모데를 보낸다.
흔들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붙잡아 주기 위하여 디모데를 보냈듯이 오늘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다.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믿음의 부족함을 경험할 때 믿음을 보충해 주는 역할이 목회자의 역할이다. 그래서 교회에는 목회자가 꼭 필요하다.
본문 2절에서는 디모데를 보내는 문명한 목적이 나오고 있다. 하반 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5절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목회자가 완전한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다 자기들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결단하며 걸어오고 있다. 그러므로 나이에 상관없이 성도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육신 적인 것이나 경제적인 문제나 사업적인 문제를 가지고 상의하거나 상담하기보다는 영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에 여러 명의 목회자가 있다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귀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문제를 가지고 혼자 전전긍긍하지 말고 상담과 신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목회자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딤전 5:17절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결론적으로 목회자는 성도들을 위하여 존재하며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 세워졌기에 이를 잘 알고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성도의 굳건한 믿음 생활은 목회자의 마음에 기쁨을 준다.
본문 6-7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서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켜보고 돌아온 디모데를 통한 소식은 참으로 바울의 마음에 큰 기쁨을 주었다. 본문 말씀에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이라는 말은 그들의 소문난 믿음 생활을 의미하고 있다. 1:3절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바울의 염려와는 달리 그들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굳게 서 있었다. 혹시나 가 역시나 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활에 극심한 어려움과 핍박이 주어지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뒤로 물러서거나 주춤거리다가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의 염려와는 달리 그들은 굳건한 믿음으로 세워지고 있었다. 마치 척박한 땅에서 나무가 자라고 풀과 꽃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과 같다. 민들레라는 식물은 매우 강한 풀이다. 꽃씨가 바람에 날려 시멘트 콘크리트 사이 갈라진 틈에서도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 같은 억척스러움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모습이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렇게 믿음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소식과 아울러 또 한 가지 바울의 마음에 기쁨을 준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보기 원했듯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바울 일행을 생각하며 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성도 들과의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바울을 처치하려는 동족 유대인들의 핍박이 심했고 그로 인하여 성도들의 강한 권유로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떠나 있는 동안에 재차 방문하기를 원했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일로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것에 대해서 사탄이 막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들을 떠난 것이 잠시의 육신 적인 이별이지 마음이 멀어진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었다. 바울의 마음처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도 바울에 대해서 보기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다는 성도들의 진심을 알게 된 바울은 그들 때문에 자기는 지금 여러 가지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도 만족해하며 마음에 위로를 얻었다.
그러면서 모든 염려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가면서 이제는 살 것 같다고 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자기 자녀가 잘되고 가정이 평안할 때 행복과 만족을 느끼겠지만 그 보다 성도들의 삶에 어려움이 물러가고 평안한 삶을 살며 자녀가 잘되고 행하는 일들이 잘 풀려서 어려움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때다. 반대로 괴롭고 낙심될 때가 있는데 성도의 가정에 어떤 큰 문제를 만나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그것을 알면서 어떻게 도와주지 못할 때다. 그 어려움 앞에 내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이 있다.
물론 목회자가 능력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회자가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하고 처리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알지만 인간적인 생각에 무엇인가를 도와주어야 할 대상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의 문제를 듣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능력이 되지 못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 느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와 성도 사이의 관계나 성도 간의 관계에 있어서 단지 한 공간 안에서 존재하기에 그저 피상적으로 알고 겉으로 인사하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하여 사랑의 관심을 나누며 서로를 위하여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 연약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었고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나의 문제뿐 아니라 상대방의 형편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과 관심으로 교역자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성도는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며 더 나아가 성도 상호 간에 기도로 사랑의 교제를 이어가는 귀한 믿음의 교회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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