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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5) 일꾼은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하나.
2026-02-10 11:19:18
사무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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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받고 싶은 교회(5)

일꾼은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하나.

살전 2:1-12

260208주일낮설교

40여 년의 품삯을 모아 이웃에게 1억을 기부하며 이웃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설악산 마지막 지게꾼이 있다. 전에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1억 원은 한번 품삯 3만 원으로 계산하면 3,333번 산에 오른 금액이다.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소년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일찍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남의 집 머슴살이와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설악산으로 들어와 16살에 지게꾼이 되었다. 예전에는 냉장고와 같이 120, 135kg까지 나가는 짐을 지고 산을 올랐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60kg 정도 지고 다닌다고 한다. 그런데 힘들게 번 돈의 대부분을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있다. 요양시설이나 장애인학교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주위에 있는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생필품을 사다 드린다. 그의 이러한 선행은 지적장애 1급인 아들 때문에 시작되었다. 그의 아내 역시 지적장애인이다. 중매로 아내를 만났는데 지적장애가 있는 아내를 평생 자신이 돌보아 주겠다는 결심으로 결혼했다. 그런데 아들도 지적장애가 있어 온종일 지게를 지고 설악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그가 장애가 있는 아내와 아들을 혼자서 돌보기는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그는 장애인시설로 아들의 거처를 옮겼는데 아들을 직접 돌보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시설에 음료와 과자를 전달했고 아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행복감을 느껴 자신의 것을 나누면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날부터 선행을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 중에는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노후대책이나 세우라는 사람도 있지만 돈을 움켜쥐고 있는 걸 죄스럽게 느끼고 오히려 선행을 하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 홀몸노인과 장애인을 돕고 효도 관광을 보내주는 등의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이런 삶은 바보 같은 모습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겠지만 섬김의 맛을 본 사람은 그 일을 계속하게 된다.

옛날 조미료 선전 가운데 맛을 봐야 맛을 아는 닭 표 간장이라는 선전 문구가 있었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시도조차 할 수 없지만 체험적으로 그 맛을 아는 사람은 누가 말린다고 그 일을 그치지 않는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자세로 일하면 처음에는 으쓱하고 뭔가 된 것 같지만 허탈감을 느끼고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이 행하신 것처럼 섬기는 자세를 가질 때 하는 일의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찾아 그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

사도 바울 역시 어려움 가운데 데살로니가에 오게 되었고 복음을 전했지만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헛되지 않고 보람있는 결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기뻐하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는 자의 모습으로 주어지는 일들을 감당했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어떤 자세로 주어지는 사역을 감당했는가를 살피며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실 된 자세로 복음을 전했다.

 

본문 3-5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바울이 사역을 감당하거나 말씀을 전 할 때에 자기의 말이나 견해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아 전하는 자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자기의 이익을 위한 불손한 마음이나 속임수로 하거나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아첨하거나 구실을 꾸며서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다. 이렇게 한 것은 결코 사람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함이었다. 바울의 신앙 자세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힘쓸 것인가를 늘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서 열심히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에는 즉각적인 칭찬과 인정이 나타난다. 그 칭찬 한마디에 움추렸던 어깨가 펴지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물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 비난하거나 야유를 보내기보다는 격려와 칭찬을 일삼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의 자세는 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하여 맡겨진 일을 성실과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인정과 칭찬을 받게 되는 줄 믿기 바란다.

바울의 중심 사상은 사람을 의식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고 힘썼던 사람이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좋게 하려고 힘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말하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도 하나님께만 인정받으면 된다는 식은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실상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을 보면 처음에는 친절을 베풀고 상대에게 과분하게 대하기도 한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서 관계가 소홀해지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거나 인기를 끌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신앙의 자세를 굳게 가지되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덕을 끼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구약의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믿음의 자세로 살았던 신앙의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비록 바벨론 왕궁에 종으로 끌려와서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젝트로 좋은 음식과 편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자기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우상의 제물로 드렸던 맛있는 진미를 거절하고 채식을 요구했다. 그러한 신앙의 자세는 계속 이어졌고 다니엘을 시기하던 사람들의 모략에 걸려 결국 사자 굴속에 던져지게 되었다.

6:16 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비록 이방 나라의 바벨론 왕이었던 다리오가 다니엘을 애석하게 여기며 사자 굴속에 던져져도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염려 섞인 말로 위로하고 있다. 사람을 처형시키기 위하여 굶주린 사자들이 있는 공간에 사람을 던져 넣으면 당장 사자 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방 왕이 믿음의 사람 다니엘을 향하여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하여 힘쓸 때 비록 이방 사람이지만 인정받게 되는 줄 믿는다.

우리 모든 성도 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자세로 신앙생활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2. 권위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의 자세로 전했다.

 

본문 6-9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군림하려 하거나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마치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유모와같이 부드러움으로 성도들을 대했는데 그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마음이 그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전 13: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사랑의 속성을 말하면서 사랑은 상대에게 무례하게 행하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무례하게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상대를 존중해주고 위해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힘이 없어서 굴복하는 자세가 아니다. 모든 것에 다 뛰어난 위치에 있다고 해도 연약한 상대가 실족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을까 조심하는 것이다. 자녀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부모이고 상대가 어린 자녀이지만 연약한 자녀가 사랑하는 대상이기에 그를 존중해주고 이해하고 덮어주는 것이다.

길가에 피어있는 장미꽃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꺾어서 자기 집으로 가져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만히 지켜본다. 둘 중에 누가 장미꽃을 사랑하는 사람이겠는가? 꺾어서 집에 가져 가는 사람은 장미꽃을 너무 사랑해서 꽃병에 꽂아두고 계속 바라볼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장미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장미 꽃을 자기 만족 을 위하여 희생시키는 것이다. 진정 장미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감히 그 꽃을 꺾지 못하고 단지 바라보며 주변 정리를 하면서 그 꽃이 잘 자라기를 소원한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작은 꽃 한 송이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다른 성도들을 향하여서도 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함부로 말하거나 대하지 않는다. 나하고는 이물이 없는 사이라서 내가 어떻게 대하거나 뭐라고 말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대하는 것은 상대를 잘 알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는 것이다. 사랑은 무시하거나 제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례하게 행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사랑에는 희생이 동반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모하여 하나님의 말씀만 전한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그들을 위하여 내어주기까지 했는데 그 이유는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희생하고 애쓰고 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측은할 정도로 지극 정성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당사자는 나중에 받을 보상을 생각하거나 자기에게 주어질 어떤 유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것처럼 인식하지만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서는 모든 것들이 다 가능하다. 바울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기의 자녀는 아니지만 바울이 사랑의 대상으로 여겼을 때 에 사랑하는 대상을 향해서는 모든 것을 다 감당할 수 있었다. 마치 자기 목숨이라도 내 줄 수 있을 만큼 그들을 사랑했다. 로마서 마지막 장에는 선교사역에 동참했던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브리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도 감사하고 있다. 16: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은 주어지는 사역을 행할 때에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세와 사도의 권위와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사랑과 희생으로 감당했음을 볼 수 있다. 진정 성숙한 신앙의 자세는 이런 것이란 것을 확신하며 이러한 믿음의 자세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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