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받고 싶은 교회(3)
신앙의 모범이 되는 교회
살전 1:5-7절
260125주일낮설교
폴 마이어라는 사람의 책을 기업체 등에서 많이 권장하고 읽게 한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성공적인 사업가로 40개가 넘는 기업체를 운영한 바 있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을 세워주는 리더 십 및 자기 계발 강사로 활약함으로 그 분야의 원조 격이 된 사람이다. 또 기부왕으로 십일조 정도가 아니라 재산의 50% 이상을 하나님께 바치며 선교와 자선사업에 헌신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성장 배경을 알면 놀라울 정도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월세가 없어서 노숙자로 지낸 적도 있었다. 게다가 말을 더듬는 핸디캡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항상 지킨 원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달라붙어 있는 것이었다. 이 원칙을 지키니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판매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잘 감당하여 27세에 백만장자 대열에 오르게 되었고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는 신앙의 기본기를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다. 그의 여러 책 중에 신앙 원리를 담은 책이 ‘성공을 유산으로 남기는 법’이다. 그는 부모로부터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했지만 신앙의 기본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물려받았다. 그게 바로 그의 인생 승리의 비결이었다.
폴 마이어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앙의 기본기로 인생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었듯이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도 바울 일행의 기본적인 신앙을 통하여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았고 그 믿음은 지역을 초월하여 널리 아름다운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나 운동선수들에게 있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다시 기본기를 다지는 훈련을 한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신앙생활이나 봉사 생활에 있어서 시큰둥해지게 된다.
그럴 때 방법은 맡겨진 일을 좀 쉬다 보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봉사를 쉬겠다고 한다. 그러나 1년을 쉬고 2년을 쉬어도 점점 신앙생활에 무기력해지고 신앙의 열정이 식어 지게 된다. 그것은 일 자체가 버거워 좀 쉬면 다시 충전될 것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일 자체가 버거운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신앙의 기본인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 자체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교회 일은 세상일과 다르다. 세상일은 육신 적인 노동이나 머리로 하는 것이기에 육체의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영적인 휴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신앙이 아닌 인간적인 욕심이나 열정으로 하다 보면 영적 고갈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육신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집중해야 하며 기도의 자리에 나와서 말씀과 기도로 영적 재충전을 할 때 회복되어 영적 힘을 얻게 되는 줄 믿기 바란다.
이런 사실을 기억하여 올 한 해 맡겨진 일을 감당할 때 먼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영적 재충전을 잘하여 영적 방전을 막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견주어보며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1.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구원이 값싼 것이 아니었다.
본문 5절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 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본문 5절에 이는 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4절의 말씀을 받는 것이다.
4절 하반 절에 너희를 택하심을 안다고 하는데 이것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구원받은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5절에 보면 그들의 구원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즉 단순히 말로만 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라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바울은 먼저 복음의 능력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사람이 복음을 들을 때에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의미한다.
롬1: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 인에게로다.”
복음의 능력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은 다음 단어인 “성령”과 연결된다. 복음이 성령으로 임한다는 것은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복음을 듣더라도 들은 그 말씀이 전해질 때 듣는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이 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우리가 변화되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이기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사람을 통하여 전도 받고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해도 그 사람의 능력이 나를 예수 믿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하여 복음을 듣거나 아니면 교회에 나와서 설교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들었을 때 완악한 우리 마음을 인도하시고 주장하셔서 예수 믿게 하시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인 줄 믿기 바란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따라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자기가 구원받은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 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구원의 확신은 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붙들었다.
우리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신앙생활 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유혹도 오고 신앙생활 할 때 많은 방해 요소가 있는데 그럴 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끝까지 신앙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가운데 거해야 한다.
구원의 확신 속에 거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어려움 가운데 주저앉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 사탄은 자꾸 우리의 구원을 흔든다. 네 모습을 보면 네가 구원받았다고 할 수 있느냐 하면서 우리를 자꾸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의심하게 한다. 그럴 때 사탄의 간계에 주눅 들지 말고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대해서 담대하게 선포하며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구원이 저절로 이루어졌거나 어쩌다 보니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성 삼위 하나님의 역사 하심 가운데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성부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원을 계획하셔서 선택하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구원의 길을 여셔서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그 구원을 나에게 적용하여 이루신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어떤 환경에 처해도 믿음의 온전한 길을 힘 있게 달려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모범적인 신앙의 빛이 사방에 비추게 되었다.
본문 6-7절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바울은 결국 믿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그 지역을 벗어나게 되었지만 전도를 받은 성도들은 그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유대인들의 핍박은 계속되었다.
계속되는 신앙의 핍박 가운데 성도들은 신앙에서 뒤로 물러나거나 주저앉지 않고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마치 이열치열의 자세였다.
데살로니가 교회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를 위시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신앙의 핍박이 있었던 일제 강점기 때나 육이오 한국 전쟁 때에 일제의 탄압과 공산당의 핍박 가운데서도 한국교회는 순교를 불사하며 신앙을 지켰다. 전에 우리 교회에서도 호남 지역에 순교 유적지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영광 지역의 염산교회나 야월교회 같은 곳은 거의 전 교인들이 다 순교한 교회였고 이러한 사실은 한참 뒤에 교계의 노력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그 역사적인 현장을 둘러보면서 은혜를 받고 있다. 한국교회는 그러한 핍박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인동초처럼 견디어 오히려 부흥의 발판을 이루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의 핍박은 그들에게 신앙의 연단 기였고 그것을 지나면서 신앙의 근력이 붙게 되어 오히려 강한 신앙의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그 신앙은 그 지역에서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모든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에 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다. 우리 앞에 고난이 찾아올 때 뒤로 물러서거나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굳센 믿음으로 고난과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우리와 주를 본받아 믿음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겼다. 신앙생활의 모습은 아름다운 향기로 드러나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은 그 교회 안에서만 머문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을 넘어 널리 퍼졌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 가운데 환경을 초월하여 일어선 것은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은 온전한 신앙 때문이다. 성령의 기쁨으로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고 증거 한다. 주를 본받은 것은 당연한데 우리를 본받았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바울의 교만이나 자기 잘난 체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고전 11:1절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산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이것이 고린도 교회에만 해당 되는 말이 아니라 바울은 가는 곳마다 이런 자세로 신앙생활 했다.
이런 신앙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전도하는 것도 매우 중요 하지만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 놓고 인도자로 인하여 실족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전도자에게 역시 책임이 따른다. 그러므로 인도자나 먼저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라면 아무 의식 없이 기분 내키는 대로 신앙생활 해서는 안 된다. 신앙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해주고 무례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높이는 자세로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며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우리의 말이나 행동을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 전도 대상자나 아니면 신앙이 약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바울은 당시 시장에 팔리는 우상 제물이었던 고기를 먹는 일에 있어서 자기는 고기를 먹어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가 어떻게 우상 제물을 먹을 수 있는가 하는 마음에 실족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그들을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유익보다는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에 그것을 알고 바라보는 다른 연약한 성도는 그 모습에 감동하고 따라 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신앙의 본을 보이는 성숙한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신앙생활의 시간이 더해질수록 우리에게서 신앙의 아름다운 향기가 드러나 믿음에 책잡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는 성도들로서 인정받을 수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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